트럭의 행렬이 연병장을 돌고 천천히 움직여 갔다. 몰개월 입구에서 여자들은 꽃이며 손수건을 흔들었다. 추장이 등을 찔렀다. 한복을 입은 미자가 뛰어 온다. 뭐라고 하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하얀 것이 차 속으로 던져졌다. 내가 그것을 주워들었을 적에는 미자는 벌써 뒤차에 가리워져서 보이질 않았다.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차 속으로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무수하게 날아왔다. 몰개월 가로는 금방 지나갔다. 군가소리는 여전했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뚜기 한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다.
- 황석영, <몰개월의 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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