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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독서

사회는 언제나 실재를 선택한다.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군대를 면제받을려고 신체검사장에서 일부러 미친 척하는 놈이 있다면 그글 어떻게 알아내느냐>는 질문에 대해 교수는 웃으며 시물레이션(simulation) 이론을 설명해주었다. 시물레이션 이론을 요약하자면 아주 간단하다. 미친 놈의 모습을 기가 막히게 연출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미친 놈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러면, 흉내와 실재 사이에, 환상과 사실 사이에 아무런 차별성도 없단 말인가? <사회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교수의 대답이었다. 흉내(simulant)와 실재(reality) 사이에서 사회는 언제나 실재를 선택한다. 실제로 미친 놈은 사회의 자기 동일성에 아무런 위협을 주지 않는다. 그는 단지 사회에 대한 자신의 부적응만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미친 것에 가깝게 미친 시늉을 하는 놈은 아주 위험하다. 그런 흉내는 <정신병>이라는 실재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이성적인 인간과 미친 사람을 구별하는 질서와 법 자체가 흉내, 그러니까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 미친 놈인지, 미친 척하는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아주 어려울 때 여러분은 그 놈을 미친 놈이라고 진단해야 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장교수는 교단을 내려갔다. 교실문을 열면서 그는 충격으로 멍청해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씨익 웃었다. 


- 이인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중에서






켄 키지의 동명소설을 밀로스 포먼이 영화로 만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 영화 속 맥머피(잭 니콜슨 분)가 생각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