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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피해자 두 번 울린 ‘항거불능’ 조항

‘도가니’ 피해자 두 번 울린 ‘항거불능’ 조항

한겨레 입력 2011.09.28 20:50 | 수정 2011.09.29 02:00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강원




[한겨레] 재판부 "반항 불가능 상태 아니었다" 엄격히 해석 


장애인들 입증 어려워…가해자 무죄·감형 '부작용' 

영화 < 도가니 > 의 소재가 된 인화학교 사건에서 일부 가해자는 관련 법률의 '항거 불능' 조항 때문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1·2심 재판부는 일부 장애인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애초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고 도입한 이 조항을 법원이 지나치게 엄격히 해석하는 바람에 가해자가 무죄를 선고받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특례법) 제6조는 "신체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8일 장애인 관련 단체의 말을 종합하면, 법원은 장애인들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 1심 재판부인 광주지법 형사10부는 이 법(당시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법'의 장애인 준강간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인화학교 김강준(63) 행정실장과 전판중(46) 교사에게 2008년 1월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들의 성폭행 시도에 대해 피해자들(사건 당시 13살, 14살)이 "수화로 '싫다'고 하거나 몸을 비틀어 저항하며 싫다는 의사표시를 한 점 등을 종합하면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불복해 항소한 검찰이 "피해자들은 수화로 단순한 의사표현만 가능한 청각장애 2급으로 지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다 피고인들한테 수차례 체벌·구타를 당해 심리적·정신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었고, 농아자들로 소리쳐 반항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감안할 때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2심 재판부(광주고법 형사1부)도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대전에서 지적장애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고등학생 16명이 전원 불구속 기소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인 장애 여학생이 가해자들을 따르고 먼저 접근했다는 정황이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장은 "가해자가 폭력적으로 접근하더라도 지적장애인들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법부가 이런 장애인의 특성에 무지한 탓에 대부분 불합리한 판결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영희 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해 10월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하는 내용의 성폭력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년 가까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최 의원은 "사법부의 판단대로라면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는 한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의사표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그런 저항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 관련영상 > 도가니 배경 인화학교 사건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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