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에는 오지 말았어야 했다. P는 내안의 불꽃이었다. 그가 사라지면 나 역시 불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사라지고 말것을 나는 알고 있다. P를 모른다 한 것은, P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잠은 우주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일어나 나무 덧창을 연다. 나무들은 정령처럼 그림자가 없다. 밤은 끝내 어두워지지 않는다. 나도 저 투명한 밤이 두렵다, 하얀 밤이여, 나뉘어라. 슬픔도 아닌것이, 회환도 아닌것이, 물이 되어 내 눈에서 밀려나온다. 밤은 그제야 출렁이듯 왜곡되며 둥글게 소용돌이친다. 밤의 하얀 폭이 세로로 쪼개지며, 그 틈으로 검붉게 질퍽이는 덩어리들이 뭉클뭉클 밀려 나온다. 나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귀를 감싸며 혼자 중얼거린다. 나는 P를 만나지 못한지 오래되었다고, 고. -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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