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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독서

안개(기형도) vs. 열린 사회와 그 적들(김소진)

기형도(안개)와 김소진(열린 사회와 그 적들).. 늘 한 쪽의 이름이 나열되면 다른 한 쪽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둘 다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지니고서 요절했던 운명 때문인지, 연대 출신이란 학력때문인지..  아무튼 김소진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기형도가, 기형도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김소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안개>와 <열린..>속에서 서로 교차하는 심상이 발생하듯이. 





안 개


기 형 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 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그 다음날 이른 아침 D일보 경찰 기자가 백병원 경비실의 전화를 붙들고 악을 써가며 두 줄짜리 기사를 부르고 있었다. "예 중부서의 김승일이라구요. 예, 변사입니다. 타살이냐구요. 그냥 실족사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무직자인 것 같은데, 저 백병원 근처에서 노숙을 하던 밥풀떼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예 그럼.... 31일 새벽 3시 30분께 서울시 중구 저동 백병원 앞의 저동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박상선씨, 괄호 열고, 이십팔 무직 주거 부정, 괄호 닫고, 가 이 건물 지하 사층 바닥에 떨어져 이마 등에 피를 흘리고 숨져 있는 채 발견됐다. 줄바꾸고, 경찰은 이 날 새벽까지 근처에서 시민, 학생 등 삼십여명이 모닥불을 피우고 밤을 새우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함께 있던 박씨가 땔감을 구하기 위해 공사장 담을 넘자가 지름 삼 미터의 환기통에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바람에 실족사한 것으로 보고 박씨를 처음 발견한 셩균관대생 설경훈 군, 괄호 열고, 이십이 유교학과, 괄호 닫고, 을 불러 정확한 사인을 주사중이다. 예. 이상입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 저)





모든 복고는 안일하고, 과거는 조금씩 미화된 채 일상을 떠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결코 미화되기 힘든, 추억이 되지 못하는 과거도 있다. 추억으로 남지 못하는 과거, 혹자는 그것을 망령이라고 부른다. 





전혀 주제가 다른 것 같은 한편의 시와 한권의 소설(단편)이지만 이상하게도 내게는 읽은 뒤의 여운이 비슷한 자취에서 맴도는 작품들이다. <안개>속 얼어 죽어 쓰레기 더미 취급을 받은 취객은 <열린 사회와...> 에서 줄바꾸기와 괄호 여닫기의 대상으로 전락한 밥뿔떼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취객의 죽음이 안개의 탓이 아닌 개인적 불행이듯, 밥풀떼기의 죽음도 그냥 변사일 뿐이다. 그들의 죽음에 아랑곳 않고 해는 다시 떠오르고 여공과 아이들은 오늘도 공장으로 향한다. 일상은 여지없이 돌아오는 것이다. 온갖 모순과 부조리, 불합리와 병폐로 가득찬 일상. 공장의 굴뚝엔 연기가 힘차게 치솟는다. 어느 누구도 간밤에 죽은 취객과 밥풀떼기의 이름을 알려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름은 일상에 묻힌 채 굴뚝 연기 속으로 증발한지 오래다. 우리가 숨쉬고 발붙인 곳 곳곳에서 강자가 있으면 약자가, 다수가 있으면 소수가, 주류의 저편엔 비주류, 소외자들이, 가진자의 반대편엔 가지지 못한 자가 늘 존재해왔듯, 안개로 덮힌 마을도, 학생의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도 그러한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역사가 일상이 될때, 어두운 역사가 일상이 되는 순간 공포는 시작된다. 샛강을 덮고 있는 안개는 불편한 일상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내.게.는. 이라고 범위를 좁힌 것은.. 아직 평론집이나 리뷰 등에서 두 작품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비교하는 글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그의 단편 11개를 모아 발행된 동명의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다. 1991년 성균관대생 김귀정의 죽음을 놓고 병원 영안실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때 까지만 해도 무관심과 냉소의 대상이었던 기층 민중 '밥뿔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별아의 자전적 소설인 <개인적 체험>도 한번 읽어 볼만 하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세계를 얘기한다. 참 이상한 세계. 다들 알지만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꿈을 위해 꿈을 포기해야 하는 세계. 최루탄 연기가 파다한 아수라장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밟고 지나간 남학생에게 '동지애'나 '대의'를 느끼는 대신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바깥세상에 존재하던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생소한 일이요, 동일한 바운더리 안에 있던 동지들에겐 불온하기 그지없는 일대 사건이다. 김별아의 <개인적 체험>을 상당 부분 인용하고 있는 김원의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역시 조금은 미화된 채 기억의 저편을 떠돌고자하는 과거를 기어이 불러낸다. 우리 역사에서 90년대, 80년대를 반추하는 것은 늘 아픈 일이다. 그러하기에 "형, 우리 그때 참 치열하게 살았잖아."류의 과거를 회상함과 동시에 과거와 단절을 시도하는(혹은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다시 과거를 방문하는) 후일담 소설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불편하게 다가오는 책이기도 하다. 






한홍구나 강준만의 현대사 서적들이 서점가에 넘쳐나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이 책 한 권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현대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도, 정치학 서적도 아니다. 그냥 어느 대학원생의 논문이다. 



"80년대의 트라우마는 증언돼야 하며, 증언될 수 있도록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중략) 동시에 나는 여전히 80년대를 '낭만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김원 저)




여담. 언젠가 전국의 신진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게 있는데.. 그때 국내 소설가 중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인물이 바로 김소진이었다. 반면 과대평가된 소설가가 이문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문열의 소설을 좋아하는 바.. 문인들의 살생부(?)를 너무 맹신할 필요는 없지 싶다. 이 설문에서 눈에 띄는게.. 젊은 작가들이 주목하는 신인들 중 김중혁의 이름이 있었다는 것. <펭귄뉴스>가 대표작이지만, <유리방패>라는 단편이 더 인상적이었다. 같은 젊은 작가군에 속하는 김영하나 박민규보다 글이 쉬우면서도 묵직하다. (만구 주인장 생각..)



사족: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김소진은 이문구의 연관검색어(?)로 더 유명하다. 그만큼 그가 사용하는 순 우리말의 구사범위가 위아래, 동서남북으로 넓고 깊다는 의미인데.. <살아서 한번도 구경 못할 법한 우리말들>류의 어휘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소설을 읽는 재미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