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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독서

생은 가끔 지독히도 비논리적이다. - 지상의 시간




생은 가끔 지독히도 비논리적이다. 굳이 비논리적이라고 규정한 이유는 생의 우연성 때문이다. 지중해 연안에서 살았던 데모크리토스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라고 했다. 우연이란 치밀하게 짜여진 시간의 거미줄 위에 걸린 나비의 행로와 흡사하다. 시간과 공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교차하는 지점에 생은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놓여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시간을 화두로 가지고 있었다. 왜 하필 시간이었던가? 마땅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때부터 시간의 축적물과 인간의 생에 대해 나름대로 사색을 해왔다.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축적된 시간의 갈피에 기록된 생의 여러 형상에 대한 문학적 사유였다. 그리고 보았다. 한때는 육체와 영혼을 몽땅 바치고자 했던 그토록 위대한 사상도 백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아무리 위대한 사상도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풍화하는 것을 보면서 시간에도 상처가 있다는 것을. 

또한 소망했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풍화하기를. 


- 정도상, <지상의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