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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독서

똘똘 뭉쳐 거짓을 믿는 세상 - 댈러웨이의 창


가령 정물화 같은 <식탁 위의 세상>이라는 사진을 보면 어느 한가한 농가의 식탁을 그대로 찍은 듯하다. 아직도 뜨거운 김이 소락소락 올라오는 수프라든지, 막 베어먹은 듯한 빵과 노랗게 잘 익은 감자를 보면 누군가의 식사 도중에 잠시 양해를 구하고 찍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몇 컷의 사진 찍기가 끝나면 이내 자리에 다시 앉아 빵을 수프에 찍어 먹을 것 같은. 하지만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스푼을 자세히 보면 무언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것을 확대하면 그 안에는 한 군인이 농부를 총으로 살해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댈러웨이는 그 사진을 유고 내전 당시에 실제로 찍었는데, 그는 그 순간에도 슬라브족 민간인을 학살하는 정부군의 사진을 직접 찍기보다 반사되는 물체에 담아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두 번 다시 식탁의 주인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또 막연히 평화롭고 한가롭게만 보이던 어느 농가의 식탁은 사실 죽음의 만찬과 같다는 공포감을 주게 만든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그런 것이다. 사진 자체보다는 스푼이나 병. 그리고 안경이나. 눈동자처럼 사진 속에서 반사되는 또 다른 눈을 통해서 찍는다. 그래서 댈러웨이의 사진은 평범해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과 주제 의식이 들어간 최고의 걸작이다. 




- 박성원, <댈러웨이의 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