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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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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표백되어 가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장강명의 장편소설 『표백』. 젊은 세대들이 자살하는 세태를 다루면서,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잔인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모든 틀이 이미 다 짜여 있는 세상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표백 세대'라 부르며, 그들의 삶과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인 '나'는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행사 뒤풀이 후에 세연, 휘영, 병권, 추 등과 어울리게 된다. 자살을 준비해온 세연은 친구들을 설득하며 5년 후에 자살할 것을 강요하고, 얼마 후 학교 연못에 빠져 죽는다. 5년 후 공무원이 된 '나'와 기자가 된 휘영은 죽은 세연에게 온 메일을 통해 사이트 '와이두유리브닷컴(whydoyoulive)'에 접속한다. 그곳에서 몇 년 전 그 친구들이 연쇄 자살을 시도하려는 것을 알게 되는데….

◈ 북소믈리에 한마디!

이 소설에서 청년들은 어떤 것을 보탤 수도 없는 '완전한 사회'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에 표백되어 가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무엇인가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고달픈 일상, 그리고 정해진 미래와 표백되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예심 심사위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본심 심사위원들의 추천을 통해 당선된 이 작품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그려내는 슬픈 비망록을 담고 있다.
추천도서|

주요 일간지 화제의 도서 > 7월 도서

저자소개

저자 : 장강명
저자 장강명은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지금까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를 거치며 경찰, 검찰, 국회 등을 출입했다. 이달의 기자상, 관훈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5번 완주했으며 틈틈이 알토 색소폰을 분다. 과학소설 팬이며 추리소설도 좋아한다. 1994년부터 PC통신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에서 활동했으며, <월간 SF 웹진>을 창간해 운영했다.

목차

  1. 제1부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 
    제2부 코마 화이트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책속으로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 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 이라고 불러. (77∼78p) 

마르크스는 공산 혁명을 주장했지만, 공산 혁명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과 이 세대의 운명에 대한 우리의 분석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넓은 의미의 선언자다. 누군가가 와이두유리브닷컴을 ‘부모 덕택에 고생 모르고 자란 배부른 녀석들의 복에 겨운 헛소리’ 라고 매도하려 들 때 “그 방식은 과격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라고 맞서며 우리의 논리를 그 자리에 소개한다면 당신은 선언자다. 우리 세대가 하루하루 좌절에 빠지는 이유가 우리 개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그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은 우리와 같은 편이다. (182p)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라는 ‘다음 단계’ 를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주체로서 뚜렷한 이념과 이상을 갖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백 세대는 지배 이념에 맞서 그들을 묶어주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념이 없으며, 그렇기에 원자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낙원’ 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는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199p) 

자살을 꿈꿔본 적이 없냐고? 왜 없겠어. 그런 건 누구나 밤마다 생각하는 것 아닌가? 나는 밤마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창문을 깨고 원룸에서 뛰어내리는 공상을 한다고. 때로는 분노에 차서, 때로는 사는 게 허무해서. 세연이 쓴 선언문에 동의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외길로 몰아간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일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선언문 덕에 위안을 받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왜지?). 그러나 내가 그 선언문으로 구원받을 수는 없었다. 설사 선언문의 내용에 내가 찬성한다 해도, 그 선언문과 실행 지침은 생활이 곤궁하거나 좌절했을 때 자살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행 지침에선 자살을 하려거든 삶의 중요한 성취를 이뤘을 때 하라고 했는데, 나는 적어도 업무에서 다른 사람이 인정할 만한 성취는 앞으로 영영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241p) 

우리 사회에 모순이 쌓이지 않는다는 세연의 주장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힘은 이제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에 태풍은 곧 몇 번 들이치리라 생각한다. 그때 그 에너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일을. 그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332p)

 

출판사 서평

“세상은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는 흰 그림!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은 파격인가, 도발인가, 아니면 고발인가 

1996년 한국 문학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나가기 위해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이 올해로 제16회를 맞았다. 2회 김연의《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 3회 한창훈의《홍합》, 4회 김곰치의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6회 박정애의 《물의 말》, 7회 심윤경의《나의 아름다운 정원》, 8회 박민규의《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9회 권리의《싸이코가 뜬다》, 10회 조두진의《도모유키》, 11회 조영아의《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12회 서진의 《웰컴 투 언더그라운드》, 13회 윤고은의 《무중력증후군》, 14회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 15회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1회, 5회 당선작 없음)까지 10년이 넘는 기존의 당선작들은 한국 문단의 주목을 받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1년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표백》은 240여 편의 경쟁작을 물리치고, 예심 심사위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본심 심사위원들의 추천을 통해 당선되었다. ‘한국 문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될 뛰어난 작품’ ‘몇 년 사이 읽은 소설 중 가장 문제적인 작품’ ‘이 시대 텅 빈 청춘의 초상, 섬하면서 슬프다’라는 평을 받으며 문학상 심사 내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표백》에서 작가는 모든 틀이 다 짜여 있는 세상에서 옴짝달싹 할 수밖에 없게 된 젊은 세대를 ‘표백 세대’라고 칭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것을 보탤 수도 보탤 것도 없는 흰 그림인 ‘완전한 사회’에서 청년 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회에 표백되어 가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위치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 사회에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밖에 없다며, 와이두유리브닷컴 사이트에 자살 선언을 올리고 24시간 후에 자살한다. 현실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꿈이나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청년 세대들의 고달픈 일상과 정해진 채 다가올 미래와 표백되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보여주면서 면밀하고 명확하게 우리 사회를 그려낸다. 

절망의 기록, 그러나 동시에 절박한 희망의 구조 요청 
싸늘히 표백된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잔인한 자화상
 

주인공은 7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서 상위 10개 대학의 뒤쪽에 위치한 A대학에 입학해서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이다. 그는 대학입시를 다시 준비하든 편입시험을 보든 더 상위권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어떤 것을 시작해도 이미 늦어버린 나이라고 생각하며, 미래의 암울한 현실을 깨닫지만 딱히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행사 뒤풀이 후에 전교적으로 유명한 ‘21세기 지도자 장학생’인 세연, 경영학과 동기인 휘영, 후배 병권, 세연의 친구 추윤영 등과 어울리게 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살을 준비해온 세연은 친구들을 설득하며 5년 후에 자살할 것을 강요하며, 자신이 가장 주목받는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 죽는다. 5년 후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며 표백되고 있던 주인공과 친구들은 우연찮게 한 사이트(와이두유리브닷컴whydoyoulive)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된다. 그러나 친구들은 5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후에 자살을 한다고 선언하는데……. 젊은 세대들이 자살하는 세태를 정확하게 그려내며 현실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사회 청년들의 삶과 일상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표백》은, IMF 이후 변화된 사회의 문제들을 혼자의 몸으로 뚫고 온 혹은 뚫고 가고 있는 청년 세대에 바치는 소설이다. 성공한 삶이라고 주변에 얘기할 수 있는 그때,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스스로에게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청년들은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대해 최선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이 세계를 헤쳐 나갈 것인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그리는 슬픈 비망록이 펼쳐진다. 

■ 주요 내용 

나는 ‘A대학교 경영학과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뒷풀이 후 세연, 휘영, 병권, 추 등과 어울리게 된다. 능력이 뛰어난 세연은 모든 시스템이 완벽하게 짜인 세상에서 자신이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갑갑해한다. 선구적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지금 현실에서 주변 친구들에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어떻게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들고, 공무원과 기자, 회계사와 유학생 등 은근슬쩍 자기가 생각한 방안들을 그들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세연은 유서도 없이 학교 연못에서 빠져 죽고,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짓는다. 
5년 후 공무원이 된 나와 기자가 된 휘영은 죽은 세연에게 온 메일을 통해 한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와이두유리브닷컴whydoyoulive’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몇 년 전 그 친구들이 연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옛 여자친구였던 추가 24시간 후에 자살한다고 글을 올리고, 자살을 막으려는 나와 휘영은 온라인사이트를 통해 추의 연락처를 알아내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그러면서 그 사이트를 홍보하게 된다. 재벌 아들이었던 선우의 죽음도 이 사이트와 연관된 것을 알게 되고, 며칠 지나 후배 병권도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며 지금이야말로 자살 선언을 이을 때라며 마포대교에서 자살하겠다는 글을 24시간 전에 올리는데……. 

■ 추천의 글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라는 번지르르한 겉옷으로 포장돼 있지만 오늘날의 청년은 기실 텅 비어 있다. 이제 아무도 그들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며, 알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내적 지향을 쫓아 일관되게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화에 의해 ‘표백’됐기 때문이다. 《표백》은 ‘화염병’을 들었으나 투척할 곳조차 찾을 수 없는 이 시대 텅 빈 청춘의 초상, 그 메아리 없는 절규를 속필로 받아쓴 소설이다. 섬하면서 슬프다. -박범신(소설가) 

우리 시대의 인문학적 성과를 한 세대의 서사 기법으로 훌륭하게 칼질해낸 소설이다. 한 세대? 실은 이 세대를 부를 이름이 없다. D세대, G세대, E세대, I세대……. 알파벳 스물네 글자가 모자랄 정도로 온갖 핑계를 다 끌어내 이 세대에 고명을 얹어주고 있지만, 그것은 이 세대의 암담한 정신 상태를 덮어 가리려는 음모에 불과하다. 아니 저자는 암담하다는 말조차 거부한다. 어둡고 음울한 것에는 차라리 깊이가 있다. 다섯 젊은이가 그 성공의 절정에 이르러 차례차례 목숨을 끊게 되는 이 이야기는 몸속 세포까지 하얗게 ‘표백’된, 그래서 암울한 기억의 깊이조차 없는 세계의 상실감을 낱낱이 드러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장점은 이 시대 젊은이들이 나눌 수 있는 가장 고결한 대화를 엿듣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디서 시작하건 어디서 중단하건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 그들의 대화는 세련되고 탄력이 있어서 아름답다. 허무를 배경으로 삼고서만 뚜렷하게 일어서는 아름다움이지만. -황현산(문학평론가) 

모든 틀이 이미 다 짜여 있는 세상, 그 구조 속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작가는 ‘표백 세대’라고 칭한다. 혁명도 전복도 불가능한 세대. 그들은 스스로를 지워버림으로써 이 ‘완전한 세상’에 저항하거나 야유를 보내거나, ‘반동’하기로 한다. 작가의 문제 제기는 자극적이고, 선언적이다.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주인공의 묘사가 대단히 사실적이고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이 소설 속에서 적지 않게 충격을 받게 될 것이며 공감과 반동 사이에서 갈등하게 될 것이다. 파격인가, 도발인가, 그것도 아니면 고발인가. -김인숙(소설가) 

자기 세대의 서러움을 껴안으려는 젊음의 열망은 시대의 더러움을 제거하려는 의지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역사에 면면한 개혁과 혁명의 요구도 이를테면 오염에 대한 표백의 시도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 인 작금의 젊은이들은 원자화된 채 자신 이외에 없애버릴 다른 무엇을 찾지 못한다. 비극과 재앙은 그처럼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세태를 냉정하면서도 치밀하게 묘파한 이 작품은 절망의 기록이다. 그러나 동시에 절박한 희망의 구조 요청이기도 하다. 난파하는 젊음의 위태로운 모스 부호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점과 선의 약속을 이해해야 한다. 작가는 한시바삐 고립된 점을 이어 소통의 선을 그어야 함을 자살자와 그들의 어리석은 갈망을 통해 역설한다. 늑장을 부릴 시간이 없다. 오늘도 작중 인물을 닮은 젊은이들이 방향타도 없이, 그럼에도 그들의 것일 수밖에 없는 시대를 표류하고 있기에. - 김별아(소설가) 

물론 자살은 극단의 저항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극단의 방식을 취함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되짚어보자. 자살이 비인간적이라면,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팽창해 젊은이들을 궁지로 내모는 자본주의의 욕망은 인간적인 것인가?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무엇이 야만인가? 그렇다. 중요한 것은 논쟁이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논쟁이다. 논쟁은 두렵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표백》은 한국 문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될 뛰어난 작품이다. - 박성원(소설가) 

기자 출신 소설가들이 그렇듯 장강명의 문장은 명확하고 간결하다. 그다지 스펙터클한 줄거리가 아님에도 《표백》이 제비처럼 날렵한 까닭은 그 덕분이다. 중언부언하지 않기, 급소만 찾아 망설임 없이 찌르고 돌진하기! 장강명은 이 소설에서 육박전에 임한 병사의 문체를 보여준다. - 조두진(소설가) 

이 소설은 맹독을 지녔다. 몇 년 사이 읽은 소설 중 가장 문제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소설이 가진 거친 야전성은 당혹감과 불온한 매혹을 함께 내장한 피스톨을 우리에게 겨눈다. 싸늘히 표백된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잔인한 자화상. 이 아픈 유령들에 대해 독자들 사이에도 극명한 호오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문제적 작품은 모두에게 동의받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 김선우(시인-소설가) 

《표백》은 IMF 이후 이 사회가 직면한 총체적 난관을 맨몸으로 뚫고 온 세대에게 바치는 소설이다. 신자유주의의 토대, 무한 경쟁의 굴레를 교복처럼 입고 성장한 세대, ‘지금 왜 《표백》이라는 소설인가’ 하는 것은, ‘그들은 어떻게 존재했나’ 하는 ‘생존’ 에 대한 물음과 같다. 누가 이들을 살게 두었나, 무엇이 이들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나, 아니, 살아 있는 게 살아 있는 것인가. 마음속 깊이 울리는 세대의 절규! 하지만 그들은 울지 않는다. 통곡하는 자, 우리다. - 백가흠(소설가) 

당대 문학은 현재 살아가는 삶의 지형도를 그림으로써 더 나은 삶의 길을 가늠하는 일이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중요한 것은 그 좌표를 통해 방향을 설정하고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표백》이 제출한 현재 우리 사회는 이미 ‘완성된 사회’ 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어떠한 혁명적 비전도 ‘신생’ 의 에너지도 휘발되고 만다. 그렇다면 여전히 들끓는 생의 에너지는? 보수(補修)만 허용되는, 콘크리트처럼 경직된 이 사회에 던지는 생의 충동은 결국 자기 파괴라는 테러리즘의 길밖에는 없다는 것. 《표백》이 제시하고 있는 이 도전적인 질문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답할 수 있을 것인가? - 정은경(문학평론가) 

이 소설의 진술대로라면 지금 우리들은 ‘세상의 끝’ 에 서 있다. 저 기묘한 묵시록적 서사는 마치 소설로 쓴 유나바머 선언문처럼 보인다. 자유와 봉기와 혁명의 모든 가능성이 표백된 세계 속에서 청년들은 질식한다. 이 소설은 거꾸로 읽어내야 한다. 한계상황에 봉착해 내향적 자기 파괴를 거듭하는 청년 세대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방식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는 진정성의 강렬한 형식을 거꾸로 상기시킨다. - 이명원(문학평론가) 

세계는 완성되었다, 그래서 삶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자살만이 대안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론(《역사의 종말》), 카뮈의 ‘부조리’ 론(《시지프 신화》), 도스토옙스키의 ‘논리적 자살’ 론(《악령》) 등이 흥미롭게 뒤엉켜서 21세기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배경으로 이렇게 다시 창궐하였다. 우리 시대의 청춘들을 향한 비범한 관심과 애정 속에서 탄생한 악마적인 논리이지만, 바로 그 관심과 애정 때문에라도 맞서야 할 논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평범하고 사소한 삶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자신이 창조한 이 파국적 저항의 논리에 맞선다. 작가와 작품의 격전.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작가가 이기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는 작품이 이긴다. 이 소설에서는 어느 쪽이 이겼나? 어느 쪽이건 이것은 패자가 없는 싸움이다. 논쟁적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등장이 반갑다. - 신형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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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출처: 교보문고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