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용한 정보/잡동사니

[안동림 - 이 한장의 명반] 카잘스의「무반주 첼로 조곡」 발견


카잘스의「무반주 첼로 조곡」 발견

1889년 어느 날,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스페인)의 한 악기점 으슥한 구석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200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무반주 첼로 조곡」의 악보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멘델스존이 발굴 초연한「마태 수난곡」에 버금가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이 음악사상의 놀라운 '신대륙 발견자'는 당시 13세의 소년 파블로 카잘스였다. 카잘스는 그 후 12년 동안의 집념 어린 연구와 피나는 각고 긑에 비로소 첫 공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일을 카잘스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내 생애의 한 시기를 이룩하는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1주일에 한 번 나를 만나러 왔다(당시 카잘스는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었다.ㅡ필자). 그 무렵 나는 이미 보통 크기의 첼로를 지니고 있었다. '카훼 토스트'(카잘스는 바르셀로나에 온 지 9개월 후 그라시아 교외의 이곳에 트리오으 멤버로 고용됨ㅡ필자)에서 매주 한 번씩 울리는 고전 음악회의 독주용 악보를 찾으려고 아버지와 함게 바르셀로나의 악기점을 뒤지고 다녔다. 어느 날ㅡ그 때 내 나이는 13세였다ㅡ우연히 한 악기점에서 바하의「6개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발견했다.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신비가「6개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라는 악보 속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이 곡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ㅡ나도 선생님도ㅡ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 발견은 하늘이 내 생애에 베푼 커다란 게시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나는 곧 이 발견의 특별한 의미를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보물을 건드려 보기도 하고 살며시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그 후 조곡에 열중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 청중 앞에서 연주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서기가지는 12년 동안 연구를 계속해야만 했다.
(중략)

카잘스는 96세로 죽는 날까지 평생 매일같이 일과처럼「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습했다. 그가 얼마나 신중했나 하는 점은 이 곡집 악보를 발견한 후, 연주 불가능한 부분을 수정 보완해 가며 40년간에 걸쳐 체험과 연구를 거듭하고 나서 이윽고 레코드 녹음을 시작했다(1936~1939년)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 녹음(SP)이 바로 전성기의 그의 생동하는 역사적 명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이 레코드(EMI/Angel)이다.

카잘스는「무반주 첼로 조곡」의 발굴 소개와 그 해석의 전형 또는 전통을 이룩하는 위대한 업적을 아무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냈다. 오늘날 모든「무반주 첼로 조곡」연주의 정점에 높이 솟아 있는 카잘스의 연주는 그 생명력과 기술적 완벽성, 내부적인 통일의 높이와 깊이, 논리성과 즉흥성의 혼연 일체 등에서 비길 자가 없다. - 안동림, <이 한장의 명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