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출처: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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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승왕을 향해 달려가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장원준의 등번호는 28번이다. 장원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번호다. 28번 때문에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할 정도다. 그는 왜 28번을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걸까. 바로 은퇴한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번호이기 때문이다.
장원준에게 28번을 승계해 준 사람은 바로 롯데의 주형광 투수코치다. 그는 선수 시절 28번을 달고 공을 던졌다. 그래서 28번은 부산 갈매기 팬들에게는 롯데의 좌완 에이스를 의미하는 번호로 통용된다.
최연소 승리투수·최연소 완투승 기록도
2000년 이후 팔꿈치에 무리 구위 떨어져
화려했지만 아쉬웠던 주 코치의 선수생활은 최연소라는 단어와 많이 연결돼 있다. 주 코치는 1994년 데뷔 하던 해에 최연소 승리투수(18세 1개월 18일), 최연소 완투승(18세 1개월 18일), 최연소 완봉승(18세 3개월)의 기록을 세웠다. 최근 한화 이글스 류현진 선수가 최연소 1천 탈삼진을 기록하기까지 이 기록 보유자도 바로 주 코치였다.
주 코치는 "류현진 같은 좋은 선수가 제 기록을 깼다니 영광이죠"라며 "사실은 최연소보다 가장 오래 던지는 선수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롯데에 입단할 때 등번호 28번을 받았다고 했다. 번호를 받았을 때 구단 관계자는 "이 번호를 오래 가진 선수가 없었다"고 했다. 주 코치는 이 번호로 끝까지 롯데에서 던지고 싶었다. 그는 희망대로 2007년 장원준에게 물려줄 때까지 13년 동안 이 번호를 유니폼에 새기고 다녔다.
많은 삼진과 완투, 완봉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주 코치는 야구하기 좋은 체형도, 구질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팔 길이가 짧다. 투수로서는 좋다고 볼 수 없다. 팔 스윙 궤도가 클수록 구속이 좋아지고 공의 낙차도 커져 타자들이 공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던진 구질은 직구와 슬라이더뿐이었다. 선발투수의 기본 요건은 3개 구질이라고 하지만 직구, 슬라이더가 무기의 전부였다는 것은 약점이었다. 물론 커브를 던질 수는 있었지만 위력적이지 못해 실전에서 거의 쓴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1996년 탈삼진 221개를 기록하며 삼진왕에 올랐다.
그는 고졸 선수 중 처음 억대 연봉을 받았다. 물론 연봉 값어치를 했다. 입단 첫해 186과 3분의 2이닝을 던지며 11승5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했다. "볼은 약했지만 제구력이 좋았어요". 주 코치의 제구력은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갖고 장난할 정도로 섬세했다. 탈삼진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최규순 주심은 공을 던지고 나면 손가락으로 요만큼 모자랐다는 표시를 해 줬어요. 그럼 저는 웃으며 정말 그만큼 안쪽으로 공을 던지곤 했어요."
주 코치는 화려하게 롯데 마운드를 지켰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팔꿈치 쪽에 무리가 생겼다. 이후 기량도 많이 약해졌다. "예전에 어떤 감독이 저보고 참 애먹이는 투수라고 했어요. 결정구가 없으니 투구수가 많아서 그랬답니다. 결국 그게 팔꿈치에 무리가 간 이유가 됐어요."
주 코치는 롯데에서만 14년을 뛰었다. 1년을 더 뛰어 15년을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당시 1년 더 뛸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던 박동수 투수코치가 마산 용마고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주 코치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다른 구단에 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주 코치는 롯데가 아닌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을 자신이 없었다. 곧 태어날 아이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당시 가득염 선수가 SK 와이번스로 가는 것을 보고 고민도 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컸던 주형광은 결국 구단의 은퇴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임신 중이던 아내가 제일 큰 힘이 돼 줬습니다. 저는 소심한데 아내는 대범하던데요. '이게 끝이 아니지 않으냐, 더 좋은 길이 당신에게 있을 거야'라고 응원해 줬습니다."
주 코치는 올 시즌 롯데 투수코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방송에도 많이 나오게 됐다. "큰 애가 네 살인데 TV에 제가 나오면 좋아서 막 화면에다 뽀뽀하고 그래요.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아빠 이야기 하면 자기도 좋은지 으쓱 한답니다."
주 코치는 일본에서 연수를 받던 중 잠시 귀국해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관중이 만원이었어요. 구단에서 은퇴식을 해 준다니 사실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야구를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다시 롯데에 남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홈 15연승' 대기록을 아직 보유하고 있는 주 코치는 홈 팬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준 만큼 그 사랑을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가게 됐다. "야구를 안 했다면 '주형광'이라는 이름이 알려질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동료들보다 지도자의 길을 좀 더 일찍 걷게 됐지만 야구를 향한 내 마음은 항상 같아요."
주 코치의 선수 시절 마지막 인터뷰처럼 그는 여전히 부산 야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야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장원준에게 28번을 승계해 준 사람은 바로 롯데의 주형광 투수코치다. 그는 선수 시절 28번을 달고 공을 던졌다. 그래서 28번은 부산 갈매기 팬들에게는 롯데의 좌완 에이스를 의미하는 번호로 통용된다.
최연소 승리투수·최연소 완투승 기록도
2000년 이후 팔꿈치에 무리 구위 떨어져
화려했지만 아쉬웠던 주 코치의 선수생활은 최연소라는 단어와 많이 연결돼 있다. 주 코치는 1994년 데뷔 하던 해에 최연소 승리투수(18세 1개월 18일), 최연소 완투승(18세 1개월 18일), 최연소 완봉승(18세 3개월)의 기록을 세웠다. 최근 한화 이글스 류현진 선수가 최연소 1천 탈삼진을 기록하기까지 이 기록 보유자도 바로 주 코치였다.
주 코치는 "류현진 같은 좋은 선수가 제 기록을 깼다니 영광이죠"라며 "사실은 최연소보다 가장 오래 던지는 선수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롯데에 입단할 때 등번호 28번을 받았다고 했다. 번호를 받았을 때 구단 관계자는 "이 번호를 오래 가진 선수가 없었다"고 했다. 주 코치는 이 번호로 끝까지 롯데에서 던지고 싶었다. 그는 희망대로 2007년 장원준에게 물려줄 때까지 13년 동안 이 번호를 유니폼에 새기고 다녔다.
많은 삼진과 완투, 완봉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주 코치는 야구하기 좋은 체형도, 구질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팔 길이가 짧다. 투수로서는 좋다고 볼 수 없다. 팔 스윙 궤도가 클수록 구속이 좋아지고 공의 낙차도 커져 타자들이 공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던진 구질은 직구와 슬라이더뿐이었다. 선발투수의 기본 요건은 3개 구질이라고 하지만 직구, 슬라이더가 무기의 전부였다는 것은 약점이었다. 물론 커브를 던질 수는 있었지만 위력적이지 못해 실전에서 거의 쓴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1996년 탈삼진 221개를 기록하며 삼진왕에 올랐다.
그는 고졸 선수 중 처음 억대 연봉을 받았다. 물론 연봉 값어치를 했다. 입단 첫해 186과 3분의 2이닝을 던지며 11승5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했다. "볼은 약했지만 제구력이 좋았어요". 주 코치의 제구력은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갖고 장난할 정도로 섬세했다. 탈삼진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최규순 주심은 공을 던지고 나면 손가락으로 요만큼 모자랐다는 표시를 해 줬어요. 그럼 저는 웃으며 정말 그만큼 안쪽으로 공을 던지곤 했어요."
주 코치는 화려하게 롯데 마운드를 지켰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팔꿈치 쪽에 무리가 생겼다. 이후 기량도 많이 약해졌다. "예전에 어떤 감독이 저보고 참 애먹이는 투수라고 했어요. 결정구가 없으니 투구수가 많아서 그랬답니다. 결국 그게 팔꿈치에 무리가 간 이유가 됐어요."
주 코치는 롯데에서만 14년을 뛰었다. 1년을 더 뛰어 15년을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당시 1년 더 뛸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던 박동수 투수코치가 마산 용마고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주 코치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다른 구단에 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주 코치는 롯데가 아닌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을 자신이 없었다. 곧 태어날 아이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당시 가득염 선수가 SK 와이번스로 가는 것을 보고 고민도 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컸던 주형광은 결국 구단의 은퇴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임신 중이던 아내가 제일 큰 힘이 돼 줬습니다. 저는 소심한데 아내는 대범하던데요. '이게 끝이 아니지 않으냐, 더 좋은 길이 당신에게 있을 거야'라고 응원해 줬습니다."
주 코치는 올 시즌 롯데 투수코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방송에도 많이 나오게 됐다. "큰 애가 네 살인데 TV에 제가 나오면 좋아서 막 화면에다 뽀뽀하고 그래요.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아빠 이야기 하면 자기도 좋은지 으쓱 한답니다."
주 코치는 일본에서 연수를 받던 중 잠시 귀국해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관중이 만원이었어요. 구단에서 은퇴식을 해 준다니 사실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야구를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다시 롯데에 남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홈 15연승' 대기록을 아직 보유하고 있는 주 코치는 홈 팬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준 만큼 그 사랑을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가게 됐다. "야구를 안 했다면 '주형광'이라는 이름이 알려질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동료들보다 지도자의 길을 좀 더 일찍 걷게 됐지만 야구를 향한 내 마음은 항상 같아요."
주 코치의 선수 시절 마지막 인터뷰처럼 그는 여전히 부산 야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야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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