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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

[80년대 누님 열전 (1)] 장혜리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 아래 사진 자료출처: 유튜브 동영상 캡쳐



장혜리. 그다지 좋아하던 가수는 아니었다. 그렇게 이쁘다는 느낌도, 노래가 딱히 좋다는 생각도 없었으니 그냥 가요 톱텐이나 기타 가요쇼에 등장하면 장혜리 나왔나 보다, 안 보이면 그다지 섭섭해하지도 않았던 여가수. 딱 그정도 였다. 그렇다고 80년대 한트럭 분량으로 쏟아져 나온 무수한 여가수들, 얼굴 반반하고 한 가창력 하는 무수한(정말 그랬다. 80년대엔 이러한 팔방미인들이 곳곳에 차고 넘쳤다) 여자이면서 가수들, 혹은 가수이면서 여자인 그녀들 중 이선희나 이지연, 김완선 같이 짧은 순간이나마 사내아이의 마음을 혹하게 만든 이들 때문에 장혜리의 입지(?)가 내 마음 속에서 좁디 좁은 것도 아니었다. 이선희든, 김완선이든.. 그시대 모든 누나야들은 쉽게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 뒤 또 쉽게 사라져 갔으니까.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장혜리의 아주 오래된 방송출연 영상을 보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녀를 다시 찬찬히 떠올려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장혜리는 (1960년 1월 16일[1]~)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공업진흥청에서 비서로 근무를 하다가 그만두면서 작은 카페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는데, 그 카페가 작곡가 길옥윤이 운영하던 카페였고, 거기에서 길옥윤의 눈에 띄게 되어 그의 곡으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며 5~6년 동안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큰 인기를 얻은 게 오히려 화근이 되어, 가수로서도 자신감 있게 모든 끼를 펼쳐내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늘 자신감 없이 주눅이 들면서 무대공포증도 함께 생겨나 무대를 떠나고 말았다.[2]


=출처: 위키백과






혜리 누님 등장이요. 유튜브 댓글이나 네이브 블로그 관련 포스팅엔 누님 보다 혜리 고모, 혜리 이모란

호칭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튜브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요즘 탤런트 이연희랑 많이 닮았다고.


'노래 잘 부르는 이연희'라고 표현하면 딱이라고 한다.






원래 1, 2집을 발매한 중견가수(?)급 이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 88면 3집 앨범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로 


초대박을 터뜨린다. 이 앨범에 수록된 다른 트랙들(추억의 발라드, 묻혀진 이야기 등) 역시 크게 히트치면서 


그야말로 인기가수 반열에 오른다. 참고로 장혜리 1집의 경우 가요계의 마이더스 손(때론 마이너스 손이 되기도 한다) 


길옥윤이 참여, 오늘밤에 만나요란 타이틀곡으로 떳다 장혜리를 노리나, 하필 


같은 해 김완선이 노래제목도 비스무리한 오늘밤이란 곡으로 데뷔, 


곧 가요계 아이돌 대세로 등극하면서 장혜리 1집은 소리소문 없이 묻히고 말았으니.















1960년 생(1월 생이니까 실제 59년 생인 셈이다)이니까 80년대 중.후반 전성기를 보냈던 또래 여가수들에 비해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김완선, 이지연, 강수지 등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전성기를 구가한 가수들이었는데, 


이들은 장혜리에 비해 나이가 5-10년 정도 어렸다. 3집 수록곡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로 막 뜨기 시


작할 때 이미 나이는 이십대 중반을 훌쩍 넘어 서른 즈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셈이다.





성형여부는 모르겠으나.. 아마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80년대 메이크업으로 이정도 비쥬얼이 구현되는 걸 보면, 요즘 화장빨과 성형기술의 


도움을 받는다면 외모는 그야말로 상당하지 않을까 한다.





마스크가 모호하면서 매력적이다. 어딘가 쉬크한 느낌도 들고.










강수지 출연 예고 자막이 당시 대세는 강수지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늘 그랬다. 짧은 시간이나마 분명 최고의 인기가수,


인기 여가수의 자리에 올라와 있었지만, 김완선, 이지연, 강수지, 이선희 등의 개성과 이미지의 벽에 둘러 쌓여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그런 누나야. 어디 있니, 누나-아-야. 








혜리 고모가 20대 초반에 가요계에 데뷔해서 바로 스타덤에 올랐더라면 그녀의 위상은 또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탄탄한 가창력에 뛰어난 외모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80년대를 빛내고 사라져간 그 무수히 많던은여가수들 무리 속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의 성을 견고히 구축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렇겠지만, 늘 마지막 최후의 순산은 KBS 한국방송 자막이 차지한다.


=사진 캡쳐/ 유튜브 동영상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