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많길래.. 문창극 총리 지명자 교회 강연내용을 한번 옮겨 봤습니다. 분량이 많아서 전부 옮기는 건 무리고.. 들으면서 대충 적어봤는데..
1) 가급적 강연 내용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구어체, 중복되는 표현 등등 가급적 그대로 옮김)
2) 대충 받아적은 거라 오.탈자 당연히 있으며,
3) 중간중간 끊어져서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많으며,
4) 일부 구어체, 사투리 등은 적당히 다른 표현으로 대체
5) 시간날 때 계속적으로 업데이트해갈 예정입니다.
개개인의 삶의 고통과.. 우리가 나라가,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어야 된다. .. 하나님이 그러면은.. 한국이란 나라를 왜 한국이란 나라를 탄생시켜 가지고.. 한국이란 나라를 무엇에 쓸려고 그러시는가.. 제일 먼저 우리 기도의 .. 그뜻을 알아야지.. 우리 한국에 대해서 이런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또 기도를 드려야 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기도를 통해서 물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역사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다 보면.... 그런 상황으로 보면은 아!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에 뜻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말씀을 드릴려는 거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럼 하나님은 과연 대한민국에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저 나름대로.. 한번 찾아볼려고 여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는 1890년, 그때가 처음 선교사님들이 이 나라에 오실 때 입니다. 그 1890년.. 이조말기 고종때 사실상 선교사님들이 아지 가끔 왔지만은, 사실은 대한민국에 상륙을, 그당시 조선에 상륙을 못했습니다. .. 배를 타고 있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쇄국정책 때문에.. 그때에 1890년에..선교사님들이 와서 사실은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890년 이후부터 지금가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훑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제목을 놓고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인가.. 저는 가만히 돌이켜 보면 고비고비마다, 구비구비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었다..라는 것을 저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민족한테 고난을 주신 것도 그건 하나님의 뜻입니다. .. 다음에 또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매번 길을 열어주셨어요. 중요중요 시기마다.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써야 될 .... 그래서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라는 것은 지금까지 오면서 구비구비마다.. 시련과 도전..이런 것을 받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기회가 되어가지고 지금 이 나라가 왔습니다.
먼저 조선 말의 풍경을 제가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 그 당시 도대체 조선이 어떤 나라였느냐.. 제가 책을 찾아가지고 조선 말의 풍경에 대해서 한두가지만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1832년에 영국상선 에무스트호라는 배가 우리나라 몽금포, 저 서해, 황해도 서해에 왔습니다. 그때 거기에 선교사가 동승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였습니다. 그 1830년이니까 순조 32년 입니다. 이 선교사 이름은 @$@#$입니다. 이 사람이 조선을 어떻게 봤느냐..자기가 북경에 가서 보고서를 냈는데.. 조선에 대한 현실을 이렇게 썼습니다.
조선사람들은 불결과 빈곤으로 자기 생애를 보내야 하는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어김없이 .. 많은 사람들이 몇달씩 씻지 않아서 '이' 따위에 해충이 득실됐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우리가 해충을 잡아죽이는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살림도구는 서툴게 빗어졌다. 진흙으로 빗어졌는데 상상할 수 없이 조잡한 종이었다.
이것이 1832년 선교사님이 우리나라 서해 몽금포에 와서 보고... 보고한 조선말의 상황입니다. 그 다음에 한 30년 뒤에 1874년에 달래 신부라는 분이 왔습니다. 이 달래 신부는 어떤 분이냐면.. 파리 외방선교사 소속입니다. 이 분이 한국에 와서 한국을 싹 보고 나서.. <꼬레의 고회역사>, 코리아의 교회역사.. 거기에 ..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 제가 또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창고, 그러니까 창고, 창고에 저장은 장부상에만 있다. 지방병기고에는 쓸만한 탄약도, 무기도 없다. 관리들이 다 팔아 먹고 누더기 몇조각과....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만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강탈한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서해안 사람은.. 어린 딸을 살 한마에 팔고 있다. 길마다 송장이 늘려있다.
이것이 1874년 달래 신부가 보는.. 한국의 현상입니다. .. 또 한분이 왔어요. 이 사람은 .. 비숍 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 그래서 한국을 다 샅샅이 들여다 봤어요. 이 사람은.. 블라디보스톡까지.. 이 사람이 부산에 와 보니까.. 한국이란 나라가 어찌나 드러운지.. 그 하수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나라고 자기가.. 부산 동래가 옛날에는 일본인들이 거기 거주했었습니다. 동래에 가보니까 동래현에는 그렇게 깨끗하더라는 거에요.. 야, 일보인이.. 한국 사람들이 사는 부산진은 .. 더러운가.. 서울도 얼마나 더러운지.. 냄새가 풀풀 나가자고..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그당시 서울이 그렇게 더러웠습니다. 그게 언제나 지금.. 100년 전입니다. 100년 전 한국이 그런 나라였습니다.
13분 경..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가지고 영월까지.. . 그래서 중간중간 내려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서양 여자귀신이 왔다, 구경을 하려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 .. 동네 사람들이 문을 전부다 구멍을 뚫어가지고.. 보느라고 그냥 눈이 그러니까.. 창호지에 눈이 몇십개나 있는거죠. 사람이 하도 밀려가지고. 그 문이 .. 문이 완전히 방안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 양평이라는델 갔습니다. 요즘 양평이요. 옛날에.... 거기 가서 아까 우리가 읽어드린 것 처럼.. 그 군 사정을 알아봤는데.. 그 쪼그만 군에 이방,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옛날에. .. 볼기치는 사람들, 이방 이런 사람들이 800명이나 있다는 게야.. 아니 이 쪼그만 군에 이방 이런 사람들이 800명씩이나 되면 그 사람들을 다 누가 먹여 살립니까? 다 백성들이 먹여 살려요. 백성들이 먹여 살리는 거야. 그 백성들이 집에 뭘 가지고 있느냐.. 이방들은 다 안대요.. 부억에 .. 몇개 .. 그리고 이방들이 그 집에 뭐가 좀 생기면.. 그 이방이 불런대는 거야. 불러가지고 그냥 무조건 곤장을 치는 거에요. 곤장을 쳐. 왜 치느냐. 자기는 모르겠단 말이야 왜 치는지. 근데 이방이 하는 얘기가. 임마, 니 죄를 니가 알렸다.. 내가 어떻게 이방이 아느냐. 니 죄는 니가 아니까 니가 고백을 해라. 그래 가지고 곤장을 쳤습니다. 그래 뭐 조금만 쌀이라도 한두마 있으면.. 그걸 다 빼앗기는 거야. ...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은 일을 할려고 그.. 일을 하면 다 빼앗기니까. 그러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게을러지는 거야. 세월은 가라. 이렇게 되는 거야.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가보고.. 평양을 들러서.. 대동강을 따라 올라 가보고.. 조선의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거는.. 그 당시 연해주.. 그러니까 지금 소련.. 블라디보스톡. 거기에도 그당시 이민을 간 사람들이.. 그때 북간도하고 연해주에 이민을 많이 갔거든. 거기를 자기들이 둘러봤어요. 조선사람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사나. 그랬더니 연해주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에게 가보니까 깜짝 놀란거에요. 아니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게을러고.. 아주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민족이.. 연해주에 사는 조선민족은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집을 반듯하게 짓고, 거기서 열심히 일을 하고.. 러시아 사람들 보다 ... 야! 조선민족이 이런 민족이냐, 참 놀랬다. 이거 왜 그럼 연해주에 있는 조선은 이렇고 왜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그러느냐. 그게 뭐냐. 그게 나라가 잘못 되어서 그렇다. 아까 말씀했듯이 나라가 백성들.. 볼기를 쳐가지고 다 뺐으니까 일을 안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나라를 떠나가지고 자기들끼리 모여 사니까 그렇게 잘사는 거야.. 아 조선민족을 자기는 다시 봤다. ..그런 얘기를 한 것을 제가.. 그것이 사실은 한국.. 우리의 정신, 조선 말, 조선 말의 한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조금 더 그 시절을 조금 더 .. 1904년 고종이 그때 있었습니다. 민비도... 1895년에.. 민비시해사건.. 그 우리가 민비를 지금은 무슨 많이 높이잖아요? 민비에 대해서. (...) 명성황후 뭐 이래가지고.. 오페라 같은 것도 있고 그런데..그 당시 왕... 그당시 윤치호라는 분이 일기를 .. 그 사람은 스물 몇살 때 부터.. 죽을 때까지 일기를 썼어요. 그 사람은 전부로 영어로 일기를 썼어요. 왜? 한국말로 쓰면.. 1890년대 전부 영어로 일기를 썼어요. 매일매일. 근데 그 사람이 쓴 일기에.. 당시 고종.. 민비에 대해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얼마나 그 당시 왕궁에는 점쟁이, 무당, 내시, 이런 사람들만 버글버글한 거에요. 그래 1904년에 노일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노일전쟁이 일어나는데.. 노일전쟁이 일어나면.. 자기가 왕이면.. 야 조선은 이제 어떻게 되는거냐... 조선이 이제 러시아한테 먹히는 거냐, 일본한테 먹히는 거냐.. 조선의 .. 어디로 가야 되느냐, .. 지도자로서 .. 그 당시 얘기를 들어 보면,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황제는 점쟁이 말을 듣고.. 궁궐 귀둥 밑에 큰 솥을 묻느라 바쁘다. 이걸 이 사람이 일기에 썼어요... 이 고종이란 임금이 그렇게 무능하고 나약하고 그렇게 타락한 사림이었대요. 민비라는 사람도 똑같아요. 이건 ..딴 .. 민비가 죽기... 민비에 대해서 평을 하는데.. .... 반만큼 백성을 섬귀었더라면.. 그해 왕실은 안녕했을 것이다. 민비라는 사람도 백성을 섬기는 데는 관심이 없어.. 전부 다 .. 왜? .. 지금 경기여고 자리가.. 러시아에서 아관파천을 하고..경운궁으로 옮겼어요. 1907년 이때 쯤에. 근데 그 옮길 때 그 즈음 1900년대에 덕수궁하고 경운궁, 그러니까 지금 시청 부근이죠. 시청 부근에는 전부 다 점쟁이하고 무당들이 득실거렸데. 왕이 점쟁이하고 무당을 좋아하니까 전부 다 점쟁이하고 무당만 있는거야. 백성들은 그 사람들 먹여 살리느라고 세금을 내야 되고, 이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어요. 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대신 뭐만 있었느냐, 왕과 왕비, 세자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 이것이 민비의 자세였다 이말이야. 제가 책을 읽어 보니까.. 그 당시 민비란 사람이 죽고 나서, 또 고종이란 그 당시.... 그 다음.. 얼마나 나라에 대해서 무책임하냐 하면, 일본한테 나라를 팔아 먹어도 좋다, 일본이 우리를 합병해도 좋다, 단 우리 왕실, 그러니까 이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게 조건이었어요.. 1910년 한일합방할 때 가장 큰 조건, 이완용이가 그 조건을 들고 일본하고 협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 나라가 없어, 조선이란 나라가 없어지면, 조선의 국왕이라는 거, 조선의 대신들이라는 거, 이거 다 없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런걸 모르는 거야. 그런데.. 봐라.. 조선을 너희들한테 바치는 건데 이씨왕조만 살려달라. 이씨왕실만 살려달라, 그럼 나라를 너희들한테다 다 갖다 바치겠다.. 그래가지고 다 갖다 바친거에요. 사실.
그렇게 우리가 무능하고..그런 나라에서 우리가 100년전, 이 오래 전이 아니야.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런 나라에 들어온 게 뭐였느냐. 선교사를 통해서 우리 기독교가 들어 옵니다. 그때 기독교가 들어왔어요. 선교사님을 통해서. 이승만 박사 전기 같은 걸 읽어 보면 그런게 잘 나타나 있어요. 이승만 박사가 이십, 처음에는 이 사람은 .. 그 당시 과거를 볼려고 그랬어요. 과거를 볼려다가 과거를 안봤어요. 못봤어. 과거를 안보고 어렸을 때 눈병이 났는데.. 이 사람은 눈이 멀게됐어. 아무 것도 안보여. 이승만 박사 어머니가 깜짝 놀랐어요 야 이거 큰일났구나. . .. 봉사가 되겠구나, 그래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해보고 해도 안낫는 거야. 그 당시 이승만의, 어린 애의 어머니가 큰일 난거에요. 근데 수소문을 해보니까 서양 선교사가 왔다 이거야. 서양 선교사가 왔는데, 의산데.. 그 양반이 그 분은 뭐든지 잘 고친다고 하더라. 그래 이승만을 데리고 서양선교사님에게 .. 서양선교사가 이래이래 약을 발라주고.. 집에 가 있으라고.. 며칠 지났어.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승만이 요만한 애가 어머니, 내 엄마가 보여요. 어! 니가 정말 내가 보이니? 니가 눈을 떴구나.. 아, 이승만 엄마가 그렇게 기뻐합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고마워 가지고 이승만을 데리고 선교사 한테 갑니다. .갔더니.. 그냥 가지 않았잖아요.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이란게.. 갈 때.. 계란 한줄기 가지고갔어. 이승만 어머니도 계란 한줄을 가지고 그 선교한테 찾아갔습니다. 우리 아들 놈 이렇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선교사한테.. 이 선교사가.. 너무 고맙습니다. 하고 선교사한테 갖다 주는데.. 그거 선교사한테 그거 그 계란은 당신 아들에게 먹이세요. 당신 아들 먹이세요... 그때 이승만이가 깜짝 놀란거야. .. 야 서양이란 게 이런 거구나. 저 선교사란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 나는 과거를 봐가지고 .. 지금 과거 볼 때가 아니구나. 이 선교사란 거는 뭐고 서양의 의술은 뭐냐. 완전히 머리가 180도 달라졌어. 그래서 과거를 다 때려쳤어요. ... 이승만이가 어디를 들어갔죠? 배재학당을 들어갔어요. 배재학당에 들어가서 신학문을 공부했어요. 그러고서 무슨 독립협회니 가입을 했잖아요. 그런데 스무 세살 때 감옥에 들어갔어요. 왜 들어갔느냐, 고종에 대한 반역죄.. 이런 거로 들어갔는데.. 그래가지고 1907년에.. 6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거에요. 그때 조선은 벌써 러일전쟁이 일어났지....일본한테 먹히게 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근데 이 사람이 <독립정신>이란 책을 썼어요. .. 29살 때.. 그 이승만이란 분은 굉장히 훌륭했던 분인 거 같애. ..제가 지금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거기에 결론이 뭐냐. 결론이 있어요. 그 결론이.. <독립정신> 마지막 부분 결론입니다. .. 그걸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높은 도덕성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 섞은 데서 삭을 ..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우리나라를 미국이나 영구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건국 4237년..6월 23일. 이걸.. 1904년에 .. 이 사람 결론이 .. 이승만 이십세때 결론이..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겠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서는 조선은 살아날 길이 없다..
이 사람이 결론을 내린 겁니다. 결국은 그렇게 내렸어요.
이승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1910년에 일본한테 합방하지를 .. 왜 이 나라를 보호해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를 않게 하시지..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그런데 저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 하나님의 뜻이다..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에겐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하나님 우리한테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에 40년 생활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용하신 거에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다는 거에요. 우리가 지금 와서, 야 과거 일제가 그거 우리한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봐요.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핏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가지고 지금 이거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거 지금 .... 우리가 애석하긴 애석하지만 그것때문에 우리가 상심될 필요는 없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 왔지만은 기독교가 들어온 반면, 그 500년 동안 내려왔던 .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이런 거는 일제시대때도 같이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일하고.. 모토로 삼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없을 것 같은데.... 찬송가.. 그당시 1930년, 40년대 찬송가에 일하러 가세... 지금 우리 찬송가에 있습니까? (찬송가 독창) 기독교가 뭡니까? 기독교가 우리 조선민족들한테 너희들 일해야 된다, 열심히 일해야 된다, 근면해야 된다.. 근면해야 된다.. 그걸 깨우쳐 준 거야. 스코필드 박사란 분이 선교사였는데 일제때. ... 하나님은 조선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 두개를 주셨다. 아마 양반들이 옛날 청나라 사람처럼 손톱을 안깎은 모양이에요. 길게. 우리나라 양반들이. 하나님은 조선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개를 주시면서 너희들이 선택해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조선민족은 애닯게도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긴 손톱을 선택했다. 양반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민영익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민비의 그 뭐 친척되죠. 일제 말에 굉장히 높은 벼슬도 하고. 그때 양반들은 아무도 일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양반들이 일하면 수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럼 양반들은 뭐하느냐. 긴 담뱃대에다 담배 피고,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거 뭡니까? 저.. 앉아가지고 독경, 독경이 아니고 강독 같은 걸 한데. 그거 만 하느냐.. 그러면 그 인제.. 이렇게 하여튼 게으른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런 거야. 그런 게으런 거를 우리 기독교 정신이 들어와서 그걸 깨자고 한 것이 우리 기독교 입니다.
당시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갔어요. 돈 많은 사람들, 근데 돈많은 사람들이 양반들 자제겠죠. ... 일본 유학가서도 일을 하느냐.. 일을 안해. 조선민족의 못된 관습 때문에. 일을 안해. 그 일을 안하고 뭐를 하느냐. 지금 제가 또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조선지식인이 어떤 거였는지..그 당시 조선유학생들의 90%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 코를 묻고 있는데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일 것이다. 이거 윤치호의 일기에 나오는 거에요. 그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이..공학을 한다든가, 무슨 의학을 한다든가... 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런게 필요한 거 아닙니까. 과학을 한다든가. 그런 거 아무 것도 안합니다. 사회학, 철학, 정치학, 그 뭐냐, 다 혓바닥 놀리면서 게을러게 먹고 살려고 그런다... 그게 우리 조선사람들 엘리트들의 생각이었어요.
윤보선이라는 대통령 아시죠? 그사람이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을 나왔어요. 문학을 했어. 그사람은 집이 백칸이 넘는.. 이 사람은 뭘 했냐. 문학을 했어. 문학을 하면서.. 그때 문학을 하면서, 집에다가 학비를 보내시오. 내가 문학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학비를 보내라고 그랬는데.. 800 파운드. 그당시 아마 한학기하고 생활비였던 모양이야. 아마 쌀이 100가마 이상 되겠죠. 그걸 보면서 통탄을 했다는 거야. 윤치호가. 아니 그 비싼 돈을 들여가지고. ... 그것도 영국 에딘버러에 가서 .. 지금 우리나라가 당장 필요한 거는 .. 이래야 되는데 어떻게 니가 문학을 선택을 하냐? 꾸짖는 편지를 쓴게 있어요. 우리나라 그때 지식인들이란게 똑같았어요. 근데 이 사람이 그걸 어떻게 버전업을 어떻게 시켰느냐.. 이 윤치호란 사람이.. 조선 유학생들이.. 그래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아주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윤치호란 사람이 뭐라고 그랬냐면, 조선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는 거다. 체질상. 왜 그러냐?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하기 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 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 그렇죠?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하는 겁니까? 자기 일 안하려고 그러잖아. 정부가 세금내라.. 세금 거둬가지고 ...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노려고가 자기 땀으로 일해야 되는데.. 야! 돈 번 사람들은 다 우리꺼를 착취했다. 저 사람꺼 뺏어서 우리가 먹자. 그게 아주 심플하게 얘기하면 그거 아니겠어요? 조선의 과거.... 오히려 이 공산주의 맞는다.. 조금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 붙는 친인척...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 조선 버전(version)의 볼세이즘, 공산주의죠? .. 그 우리나라 이조 마인드에.. 공짜로 놀고 먹는 게 몸에 박혀 있었데.. 하여튼 이런..이런 이런 나라가 있었데.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 가지고 변화를 주신거야. 제가 이거 #$@#$# 국립민속관인가요? 경복궁에 있는 거. 제가 사진전엘 가봤는데.. 북간도에 명동이란 데가 있었어. .. 이 사람들이 어떻게 정착을 해서 자기들이 일궈나갔느냐 하는 것을, 그 후손이 개발을 했어. ... 사진을 .. 사진전을 연거야. .. 그 당시 북간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깨긋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진짜 감명스럽더라구요. .. (...) 김약.. (...) 제가 정확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김약연 목사란 분이 가족을 한 120명을, 다섯 가구를 끌고 가서 거기서 교회를 만들었어요. 명동교회를 만들어 가지고.. 명신여학교를 만들고, 그래서 사진전을 했는데, 이렇게 아까 이가 득실거리고 냄새가 나는 조선인들이었는데. 얼마나 깨끗해지..... ... 애들이 중고등학생.. 여학생들한텐 세라복을 입히고.. 실험실엔 전부 다 가운을 입혀서.. 비커.. 애들을 ..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가지고 제복을 입혀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가 500명, 500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거기서 잘 살았어요. 우리가 게으런 가운데.. 우리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 뜻에 맞게 살기로 작정을 한 다음에 이렇게 달라진 거에요. 그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조선민족한테 보여줬나... 제가 인제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일제시대가 지났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독립을 주셨어요. 독립을 주셨으면 잘 살게 만들어야.... 우리가 36년을 우리가.. 방황을 했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신거야. 분단이야, 분단. 남북분단을 만들게 해주셨어요.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그 당시 아까 얘기했죠. 조선 지식인이라는.. 다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자동적으로 공산주의 되는 거에요. 그 당시 남한의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 조선노동당이 있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나중에 여순반란같은 거 일으켰는데...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 우리는 공산화 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위에는 다 소련이고 그 옆에는 중공이고.. 우리가 거기서 견뎌낼 수가 없어요. 근데 우리를 분단시켰어요. 그때는 안타깝고 우린 독립을 원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너희들은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은, 앞으로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의 그 게으름, 죄..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 와서는 오히려 우리한테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이 이 정도 살게 된 거에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되었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금 월남, 중국.. 중국은 .. 몇년 사이에 잘 살아졌지만... 지금 북한, 그게 지금 우리 현실이에요. 남한이.. 지금 북한이 되어 있는거야. 하나님이.. 너희들은 안되겠다. 다시 고난을 더 가져라. 그래서 분단을 시켰어. 그거 뿐입니까. 6.25까지 주셨어. ... 6.25가.. 지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단련이 된거에요. 6.25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그 당시 한국을 떠날려고 했어요. 1949년에 애치슨 라인이란 걸 만들어 가지고.. 미국은 방어책임을 한국에서 제외한다. 일본하고 대만까지만 미국이 방어책임을 진다. 그리고 1949년에 소위 남한에 있던 미국은 다 철수했어요. 철수하고 나니까 1950년 북쪽에서 쳐들어 온거에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가지고. 그러면 그때 6.25 전쟁이란 거는 6.25 전쟁이났으면... 북한에 우리 다 흡수되고 말았을 거에요. 근데 하나님이 안되겠다, 너희들을 붙잡아야 겠다.. 너희들 어떻게 붙잡느냐.. 하나님이 미국을 .. 미국이 6.25 사변.....안보조약을 맺었어. 그 뭐냐.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면은 미국이 침략을 당한 것 처럼 .. 미국이 침략을 당하면.. 우리가 무슨 미국을 도와줄 수 있습니까. 괜히 그 미국의 조약을 맺기 위해 그런거지. 그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거에요. ..그것 때문에.. 여러분 한국에 미군이 없는 한국을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반미, 제가 친미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야. 미군이 없는 한국은 금방 .. 옛날에는 소련 밑에 가 있는 거고, 지금은 중국 밑에 가 있는거야. 중국의 속국이 될 수밖에.. 이미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거의 되지 않았습니까? 6.25를..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 돌아보면.. 그 다음에 경제발전했습니다. 경제발전 했는데.. 경제발전 누가 시켰습니까?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 그 당시 신발, 앨범, 흑백 티비, 이런거 다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어디서 그거 사줬지요? 그거 미국이 다 사준거에요.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뭐냐,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에.. .. 우리 경제개발도 사실은.. 미국의 영향이.. 저는 이런 얘길.. 우리가 친미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야. 나라를 지키리면 힘이 있어야 돼. .. 이런 게 골고루 다 있어야 돼. ..그런데 그거 있는 데에 지금 돌아보니까 하나님의 뜻이 다 이해가 될라하더라..그걸 말씀드리기 위해서 그런 거에요.
그리고 그때 ... 1960년대부터 우리는 공업화를 했잖아요... 일본의 기술력,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앞장을 섰습니다. ..우리는 일본만 따라가면 되는 거에요. 박정희나 삼성이나 .. 우리 일본사람들 특히 우습게 보지요. 쪽발이들. 이렇게 생각하지만. 일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이렇게.. 또 하나, 중국.. 지금은 중국이 달라졌지요. .. 우리가 막 경제발전을 할 때 중국은 뭐했습니까? 중국은 문화혁명했어요. 문화혁명이란 게 뭡니까? 공산주의 젊은애들이 다 내쫓는 거 아닙니까? 윗사람들 다 내쫒고, 다..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거... .. 한 20년은 중국이 문화혁명으로..내팽게쳤어.. 우리가 20년 사이에 우리는 올라섰어. 어느 단계까지 올라섰어. 그러니까깜짝 놀라고 중국이 1980년.. 그러면 안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미국을 우리한테 주셨고.. 경제가 필요할 땐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게 해주신 거야. 이런 게 보통 생각하면 역사가 다 그런거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을 보면 이게 당연하게.. 역사인거야. .. 제가 걱정이 되는 거는.. 중국이 옛날 중국이 아니잖아요. G2가 됐어요. G2가 뭡니까? 세계에서 두번째 가는.. 우리는 평생 미국이 제일 큰 나라고 제일 잘 사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 4년 뒤엔.. 중국이 ..생산을 가장 많이 하는.. 경제 제 1의 국가가 된다 이거야. .. 전체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 1위입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 앞으로는 중국이 1위가 될꺼다. 그게 2015년이다. 그럼 2015년 이후 한국은 이게 상당히 심각한.. 우리는 ..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중국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아주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도 우리가 잘 해결을 해 나가야 할 일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 까지 좋은데.. 거기 난 또 하나님의 뜻이 저는 있다고 봐요. 그 뭐냐. 과거에는 세상의 축이 대서양이었어요. 미국과 구라파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는거야. .. 일본이 3위나 4위 국가지, 한국이 지금 7, 8위 국가지. .. 그러면 이 동북아가 .. 세계의 중심권이 된다고. 그러면 이건 또 뭐냐, 거기에 ... 거기에 굉장히 중요한 지정학적 뭔가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역사를 제가 지금 .. 중국을 한편으로 우리 물건을 수출해야 하니까..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또 북한하고 가깝잖아요. 중국의 영향에 따라서..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를 하셔야 하는데.. 하나님이 터치를 하셔야 되는데..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 그래서 나라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말고.. 처소교회까지 합쳐 가지고.. 1억명이라고 하는데.. 공산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무슨 협상을 통해 가지고.. 동구에서도 그런 일이 다 일어났어요. 폴란드.. 폴란드를 ... 그 당시 교황 바오르 2세입니다. .. 소련이 왜 붕괴를 했습니까. 그냥.. 레이건은 소련을 우리가 무슨 핵무기 개발 경쟁을.. 하나님이 터치를 해야 된다.. 겉으로는 영화 배우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시하는데.. 고르바쵸프를 개종을 시켜야 겠다.. 그래 가지고..정상회담을 하는데.. 그때 비밀이죠. 두 사람만 있을 때.. 야, 너 하나님 믿어야 된다. 너 고르바쵸프가.. 하나님이 계시다. 내 아들이 지금 있는데.. 나는 내 아들이 .. 좋은 식당에 데리고 가가지고 .. 얘야, 너 이거 음식이 어디서 만들어.. 글쎄요, 그거 주방에서 만든 거 .. 그럼 너는 누가 만들었냐.. 하나님이 만든.. 고르바쵸프 당신이.. 직접 정상회담을 하면서.. 하나님 믿으라고 전도를 했어..
저.. 카트.. 협상을 통해 가지고. 우리 남북을 분단시킨 이유가 다 있어. 왜냐? .. 다시 한번 보여줄려고 .. 개방정책을 써가지고.. 그때 한국민족이 아! 이게 뜻이 있구나.. 제가 왜.. 우리나라가 보통 나라가 아니야. 하나님이 매순간 매순간 기회를 주셨어요. 모든 나라가 한국으로 다.. 아시아에서 모든 사람이 한국에 오고 싶어해요. 다 올려고 그래. 그 사람들 생각에 한국은 ..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그랬어요.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가.. 지금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 ..그 사이클은 우리 인간잘못으로 있는거야. .. 부유해져. 번성해, 그럼 그 다음엔 무가 생깁니까.. ..그 다음에는 자기가 나태해지고.. 이기주의가 번성하고.. 그 다음 단계는 뭡니까.. 하나님은 우리한테도 이 싸이클을 주실 지도 몰라요. .. 기회의 나라를 달라는 건 뭐냐. 미국 선조들이 처음.. .. 미국이란 나라를 저 언덕 위에서 빛나는 집으로 .. 하고 선교사들이 기도한 거 아닙니까.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서.... 앞으로 G3가 될 지도 몰라. .. 유럽은 이미 끝났어요. 미국도 끝날 때가 ...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누구를 써야겠습니까.. 하나님이 쓸 사람이 있어야 되요. .. 우리 민족이 잘났고 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임진왜란때 일본 소서행장을 따라서..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200년, 300년 앞서 가지고 선교사가 왔는데 일본은 하나님 나라가 안됐어요. 중국도 일본보다 .. 한국이 유일하게.. 지금 천만 교인이라고 그러는데.. 참된 신자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아까.. 하나님은 아 한국을 써야되겠구나. 한국을 다음에 세계 중심국가, 세계 새 예수살렘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런 뜻이 ..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돼. 그럼 하나님의 뜻이 그런데....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야 되는데.. 나라를 위한 기도..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아까 .. 흥망성쇠, 번영, 퇴락, 부패.. 이게 다 이어진다고 그랬지요. 우리가 이 싸이클을 끊어야 되요. ... 그래서 이 나라를 다시.. 도덕의 나라로, 개혁의 나라로..
미국에 유수한.. 그 사람들은 그 당시 월급을 안받을려고 했어요.. 미국의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는.. 링컨은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기도하면서 했어요. 링컨이 공부를 못한 사람이에요. 켄터키에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 논란이 많은 동영상이라 그 내용도 확인할 겸 직접 시청하면서 받아적은 것이라 고생 좀 했네요. 내용이 완전하지도 않고 오탈자도 많은 관계로, 필요하신 분들은 퍼가지는 마시고 링크만 걸어주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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