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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억하는가, 1999년 가을의 자이언츠를, 그리고 자이언츠의 가을을.

1982년 나는 롯데 자이언츠 원년 어린이회원이었다. 거제리 과자공자 앞에서 5시간이 넘게 줄을 선 끝에 회비 5천원을 내고 회원이 되었다. 내 손에는 남색 헬멧과 스머프 유니폼(티)이 건네졌다. 자이언츠는 개막전 이후 3연승을 구가했고, 자이언츠의 앞날에 패배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삼미 슈퍼스타즈에게 첫 패배를 당한 그날, 나는 집안 창고에서 울면서 밤을 보냈다. 나는 이기는 야구가 좋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가 없다는 말은 이제 지겹다. 하지만, 하지만.. 딱 한번 패배가 현실이 되어야 한다면.. 1999년 한화에게 우승을 내준 자이언츠의 패배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면 좋겠다. 왜. 1999년 자이언츠의 가을, 가을의 자이언츠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네이버에 '1999'를 입력하면 자동검색어 10위권 중 무려 3개가 1999년 플레이오프에 관한 것이다. 1999년 그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김명성(감독): 1999년 삼성과의 포스트시즌 단 한번의 승부로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롯데를  준플레이오프에 올려 놓았으나 이번에는 삼성에 1-3으로 패해 탈락. 결국 2001년 7월 24일 별세. 향년 55세였다. 그의 후임이 백골퍼(백인천)이 되면서 롯데 암흑기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만약 그가 살아서 계속 자이언츠를 이끌었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런지.. 많은 롯데팬 들이 의문부호를 다는 부분이다.


3차전 사직 대승 직후 김명성, 서정환 감독의 코멘트.

 


참고로 롯데 암흑기 중 특히 2002년-2004년까지 롯데에선 10승 투수가 한 사람도 없었다. 성적은 곤두박질쳐서 2001년 59승 4무 70패, 2002년 35승 1무 97패로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 이후 두 번 더 최하위(8위)에 오름으로써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할) 대업을 이룩하며, 8888 - 577의 비밀번호 완성. 이후 이 비밀번호를 풀 사람이 산넘고 물건너 바다건너 저쪽 미국땅에서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노펴' 제리 로이스터였다. 그가 부임하면서 비로소"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DTD 이론(창시자: 김재박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이 부정되게 된다. 


"작년에 롯데가 아이스크림 이벤트를 했는기라예.롯데 아이스크림 500개를 준비했다고 하대예.근데 300개나 버렸답니더.관중들 200명 밖에 안왔거든예. 지금 롯데가 그래예.파도타기도 못해예.파도가 중간에서 끊겨버리거든예. 우찌 이리 됐습니꺼? 롯데가 천날만날 지니깐 그런거 아닙니꺼!"  - 모 롯데팬의 아우성. 스포츠서울에서 퍼옴.(근데 좀 쪼잔하다. 아이스크림 500개..)



 

 




주형광(투수): 2차전 선발로 김상진과 맞대결을 벌였지만 2-6으로 패. 7차전 연장 11회말 삼성의 세 타자(김태균-진갑용-정회열)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 세운 뒤 한쪽 무릎을 꿇고 포효하는 모습은 야구사에서 가장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현 롯데 투수 코치.
 

 
 

 


- 자이언츠 선수들은 스머프 유니폼(푸른색)을 입어야 비로소 롯데 자이언츠 선수로 보이는 듯. 윤학길도, 박동희도, 김용희도 모두.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아닌가 싶다. 물론 삼성팬들은 마음 아프겠지만.. (윗 사진)



박석진(투수): 문동환이 삽질한 플옵, 비록 제 3선발이었지만 롯데의 실질적 에이스였다. 1, 2차전을 모두 내주고 7차전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3차전 그의 활약으로 자이언츠는 10-2로 대승,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고 4차전을 기약하게 된다. 4차전은 다시 삼성의 승리,  5차전은 호세의 홈런 한방으로 9회말 대역전승. 이로써 시리즈 전적 2승 3패. 그리고 6차전에 박석진의 활약으로 다시 롯데 승. 시리즈 전적 3승 3패, 승부는 원점으로. 이날 6차전에서 박석진은 7이닝 퍼펙트 행진을 펼치며 롯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원래 삼성 선수였으나 롯데로 트레이드 되어와 꽃을 피우고... 플옵에서도 맹활약. 결국 플레이오프 MVP.(4차례 등판해서 2승 1패) 하지만 그가 어떻게 롯데로 오게 되었는지 이면을 보면 그만한 활약은 꼭 해줘야 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1997년 박석진을 얻기 위해 거인의 상징과도 같던 박동희를 내어 주었기 때문에. (참고로 이때 박동희/김종훈 - 박석진/이동수 2:2 트레이드가 단행되었다) 그리고 박석진은 다시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다. 삼성에서 롯데로, 다시 롯데에서 삼성으로 소속팀을 옮긴 흔치 않은 선수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문동환(투수): 당시 롯데의 에이스. 17승 4패, 평균자책점 3.28이란 기록을 볼 때 팬들의 높은 기대는 당연히 무죄였다. 하지만 플옵에선 마해영과 더불어 투타에서 대형 포크레인을 이끌고 와 열심히 포크질을 한다. 에이스란 명칭이 무색한 활약을 펼쳤다. 1,4차전, 가장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나서 패하면서 준플 탈락의 일등공신이 될 뻔 했지만, 박석진, 주형광, 기론 등의 활약으로 마산아재들과 맞짱 뜰 기회를 놓침. 1, 4차전 두 번 다 삼성의 노장진과 맞대결을 펼쳤지만 5-6, 6-9로 패배. 시리즈 7차전 역시 선발 출전, 하지만 김기태에게 홈런을 맞는 등 부진, 0-2 상황에서 조기 강판, 고무팔 기론에게 마운드를 넘겨 준다. 무슨 장관직도 아니고. 이후 기론이 8회까지 던지고 박석진이 등장. 참고로 문동환은 1999년 시즌동안(189.1 이닝) 12개의 홈런을 맞았으나, 플레이오프 12 이닝동안 무려 홈런 9개를 허용, 홈런공장을 차림. 이후 롯데를 떠나 한화에서 반짝 16승을 찍었으나 내리막길을 되돌리지 못하고 은퇴. 현재 한화 불펜 투수코치.


 

 


- 이랬던 문동환이.. @@ 예전에 사직에서 문동환이 연습투구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공이 미트에 들어갈 때 펑펑 소리가 났다. 옆에 있던 마산아재 왈, "아따, 문도화이 시원시원하게 던진다."


에밀리아노 기론(투수): 고무팔 기론. 같은 도미니카 출신인 '호세' 말동무나 시킬 생각으로, 그야말로 별 기대없이 길 포일의 대체용병으로 데리고 왔으나, 이게 웬걸.. 정규시즌에서 기대 이상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서 플옵에서 롱릴리프로 맹활약며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공을 세운다. 롯데를 나간 뒤 잠시 한화에서 뛰다가 타이완 무대로 옮기게 된다. 여기서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단지 가족을 위해서 오늘도 공을 던진다는 기론. 어릴 적 보았던 야구만화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드는 선수. 롯데를 거쳐간 많고 많은 외국인 용병들 중에서 잘 잊혀지지 않는 얼굴 중 하나. 롯데에서 3시즌 동안, 19승11패 2세이브를 올렸다. 


 




박지철(투수): 90년대 중반 한때 롯데를 대표하던 투수였다. 주형광과 동갑내기지만, 주형광이 초고교급 선수로 입단 당시 기대를 한몸에 받은 반면, 박지철은 동래고를 졸업, 신고선수(연습생)로 입단한다. LG에서 은퇴, 2010년 부산 신정중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

가득염(투수): 좌완 스페셜리스트. 지금 자이언츠 코치. 방송쪽에선 한선교, 야구계에선 가득염, 두 사람이 아줌마팬들을 양분하고 있었다.

염종석(투수): 무슨 말이 필요한가. 사진 한장이면 다 되는 걸.



손민한(투수):
5차전 호세의 끝내기 한방으로 구원승을 따냈다. 손민한의 부산고-고려대 절친이자 황금배터리를 이루었던 진갑용 역시 플레이오프에 적병으로 출전. 진갑용은 7차전 11회말 주형광의 K-K-K 연속삼진의 먹이가 된다. 두번째 K가 진갑용.


강상수(투수): 그가 등판하는 날이면 상대팀은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자이언츠 팬들은 손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동료 선수들도 마찬가지 였을 듯. 
임경완 이전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불쇼를 다 보여주며.. 그러나 다행히(?) 플레이오프 7차전 마지막 순간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중간계투 박석진 뒤를 이어 던지다 마무리 주형광에게 공을 건네 줌. 지금은 엘지에서 스카우터로 활약 중.


- 주형광이 마무리로 삼진을 잡자 환호하는 상수옹. 그가 환호하는 모습에 팬들도 덩달아 환호했다. 왜, 강상수가 벤치에 있었기에. 롯데팬들에겐 애증의 마무리. 



김응국(지명대타): 박정태와 함께 1999년 까지 남은 1992년 우승멤버였다.(주전 야수들 중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떠난 전준호의 자리를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으로 잘 매워주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란 평을 받는 선수. 시원하면서도 정교한 타격이 일품이었고 골든글로브 2회를 수상할 만큼 수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플옵에서도 평균치 이상의 활약을 펼친다. 현 부산고 타격코치. 참고로 김응국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조언한 인물이 바로 편파해설의 달인 성득옹(이성득, 현 KNN 라디오 해설자)이 되시겠다. 당시엔 롯데 투수코치.  

 

 


지금의 성득옹과 롯데 자이언츠 코치시절 이성득 위원. 오른쪽에 허구연 MBC 해설위원의 모습이 보인다.


김대익(중견수): 문동환을 데려오기 위해 전준호를 현대 유니콘스에 내준 내막에는 김대익이란 신인에 대한 기대치가 자라고 있었다. 그가 빠른 시일내에 전준호의 자리를 메워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무럭무럭 자라주지 않았고, 결국 2004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다. 재밌는 것은 이때 함께 트레이드 된 인물이 바로 투수 플옵의 영웅 박석진. 김대익과 박석진을 주고 삼성으로부터 노장진과 김승관을 받아왔다.


박정태(2루수):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박계원이 던진 공을 받고 2루 베이스를 밟은 뒤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99년 플옵 당시 팀 주장. 롯데의 혼이자 상징이 되어버린 박정태에겐 1999년 포스트 시즌이 그에겐 개인적으로 세번째 도전이 되었다. 첫번째.. 1992년엔 거침 없이 우승, 두번째 1995년엔 준우승에 머물렀고, 세번째 도전 역시 정상의 문턱에서 좌절. 대구 6차전때 선수들을 이끌고 퇴장하던 모습은 야구팬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지금 롯데 2군 감독이자 메이저리그 추신수의 삼촌이기도 하다.


- 1992년 한국시리즈 제패의 일등공신 박정태.



  

"알근나! 온으 무조껀 이(기)야 된다!"

 


호세(우익수): 롯데 클린업의 핵이었다. 무엇보다 임팩트가 있는 타자였다. 이때 활약상은 배리 본즈 부럽지 않은 파워와 임팩트를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1승 3패에 5차전 마저 뒤지고 있는 상황, 아웃카운터 단 한개, 상대 마무리는 임창용.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는 최강의 마무리 임창용을 상대로 좌월 3점 홈런을 날린다. 끝내기 홈런. 이 3점 홈런을 자이언츠팬들 뇌리속에 영원히 박히게 만든 게 또 해설자의 샤우팅?이었던 것으로 기억.. 성득옹이었나. KNN(PSB) 으로 이 장면 본 사람들은 다 기억할 듯. 암튼 이로써 시리즈 전적 2승 3패. 이제 승부는 삼성의 홈구장인 달구벌에서. 대구에서도 맹활약, 그리고 7차전에서 그 유명한 방망이 관중석 투척 사건. 이후 2007년 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선수생활을 함. 중간에 2중 계약서 파동으로 비난을 받음. 참고로 한국, 미국 오가는 사이 다시 MLB 로 복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뉴욕 양키즈 등에서 주로 대타나 벤치워머로 뛰다 ... 2007년 롯데 선수로 활약하다 성적부진으로 퇴출. 호세는 우리나라에 온 많은 용병들과는 확실히 급이 다른 선수였다. 대부분의 용병이 마이너리그 출신이거나 보잘 것 없는 메이저리그 이력서를 가지고 국내에 들어온 반면, 그는 MLB 올스타전에 출전한 이력의 용병이었다. 클래스가 다르다는 말을 이때 써야 하는게 아닐까. 참고로 다음해 2000년에 삼성에 이러한 클래스를 논할만한 훌륭한 선수가 있단했으니, 그 이름은 훌리오 프랑코였다. 기억이 맞다면, 2001년 MLB 포스트시즌에서 김병현이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마무리로 활약하고 있을 때,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타자로 BK와 맞대결을 펼쳤지 싶다. 
 

원래 시리즈 5차전 9회말. 김대익이 2루타를 치고 박정태가 볼넷을 얻는다. 그다음 마해영 폭풍삼진. 다음 타자는 당연희 고의사구로 걸러야 할 호세, 아니나 다를까, 임창용은 호세를 상대로 1, 2, 3구 모두 볼을 던진다. 굳이 호세와 정면대결을 펼칠 생각이 없었던 것. 하지만 호세가 다음 공 두개를 연속 헛스윙하자, 아, 요것봐라. 공 하나면 삼진이네.. 생각한 임창용이 정면승부를 하고, 결과는 끝내기 3점 홈런, 대역전승. 임창용에겐 2009년 WBC 결승에서 이치로와의 마지막 대결이 생각나는 모습. 아울러 전성기 박정태가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도 떠올리게 한다. 때론 일부러 투 스트라이크를 만들어 놓은 뒤 승부에 임한다고. 그러면 오기가 발동하고 집중력이 생긴다는 그런 내용으로 기억.





1999년 정규시즌 호세의 성적

타율: 0.327 / 36홈런 122타점 12도루 / OPS: 1.061


2007년까지 롯데에서 호세 기록(4시즌 동안):

타율 0.309 / 95홈런 / 314타점 / 411안타
사상 첫 2경기 연속 만루홈런, 63경기 연속 출루, 역대 최고령 홈런,.역대 한 시즌 최고 출루율(2001년, 0.503)




▶ 5차전 호세가 끝내기 3점 홈런을 친 뒤, 홈에 금의환향하는 모습. 그런데 좋아라 삼매경에 빠진 저 아기같은 분은.. 바로 양상문,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아니 신임 LG 감독이다.
 



호세 메이저리그 후반기 캐리어.

훌리오 프랑코(Julio Cesar Franco) / 야구선수
출생 1958년 08월 82일
신체 키185cm, 체중9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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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났었던 삼성의 프랑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클래스(class)'라고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이후 다시 메이저리그로 가서 오래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다. 기억으론.. 2001년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아틀랜타 브레이브스 간 챔피언쉽 시리즈였나.. 암튼 그때 BK(김병현)가 시리즈 우승을 확정짓기 위해 구원등판 했을 때 상대타자였었던 걸로 기억. 마지막 타자였던가..?

 

참고로 1999년 롯데의 핵타선 3인방(박정태, 호세, 마해영)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박정태: 타율 0.329 홈런 11개 타점 83점
호세: 타율 0.327 홈런 36 타점 122점
마해영: 타율 0.372 홈런 35개 타점 119점 ... 이때 마해영은 정말 몬스터 시즌이었다.


참고로 셋의 안타 총 개수는 488개.

여기에 조경환(타율 0.284 19홈런 65타점)과 김응국의 활약상이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최강의 타선이었다.
 

반면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클린업 트리오(
이승엽 - 스미스 - 김기태)가 홈런 122개, 타점 309개를 합작. 홈런은 삼성 승. 타점은 롯데 승.




마해영(1루수): 공포의 5번 타자. 1999년 페넌트레이스 그야말로 몬스터 시즌을 보내고 포스트시즌을 맞이한다. 홈런 35개, 119타점, 187안타, 타율 0.372, OPS 1.114 헉헉! 그야말로 대박 시즌! 하지만 플옵에선 연일 대형 포크레인을 가지고 와 열심히 땅을 파다, 6차전 쓰리런 홈런에 이은 7차전 분노의 홈런 한방으로 완전 이미지 회복. 특히 홈런을 친 뒤 홈에 들어오면서 주먹질하는 장면은 주형광이 마지막 삼진을 잡은 뒤 포효하는 장면과 함께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해영의 홈런이 값졌던 것은, 호세 방망이사건으로 자칫 분위기가 삼성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동점홈런이었기에 더 가치가 있었던 듯. 그 뒤 선수협 파동을 겪으며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어 이번에는 삼성의 첫 우승에 일등공신이 된다.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인생사 새옹지마.

 그 유명한 마해영의 홈런 세레모니
 

▶ 2002년 삼성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일등공신이 된 마해영옹. 인생사 새옹지마.


▶ 1999년 롯데 자이언츠 클린업 트리오, 그들!! 2014년 손아섭-히메네스-박종윤(최준석) 트리오는 이들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임수혁(포수, 대타):
1999년 7차전 극적인 동점 홈런을 치고서 양손을 번쩍 들어 그라운드를 도는 그 모습은 
롯데팬들 뇌리에 깊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호세가 퇴장당하자 대타로 출전, 동점 홈런을 날리게 된다. 만약 호세가 그대로 경기에 뛰었더라면..? 사실 마해영과 함께 마림포로 이름을 날리던 임수혁은 1999년엔 동료 포수 강성우에게 밀려 73게임 출전에 그치고 있었다. 이날 플옵 7차전도 선발은 강성우의 몫. 하지만 8회말 김종훈, 이승엽에게 연속홈런을 얻어 맞고, 3-5로 점수차가 벌어지자 김명성 감독은 강성우 대신 장타력이 있는 임수혁을 대타로 내보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모험이자 '신의 한수'가 되었다. 아무튼 그의 용병술은 적중, 임수혁은 동점 홈런 한방으로 마음 속 무거운 짐을 다 털어내게 된다. 하지만 이듬해 2000년 4월 18일 잠실에서 엘지와의 경기 도중 2루에서 갑자기 쓰러진 뒤 10년 동안 병상에서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지난 2010년 2월 7일 잠실벌 2루 베이스 위에서 영원히 잠든다.


임수혁은 프로통산(1994년 - 2000년) 488경기에 출전, 타율 0.266, 홈런 47개, 타점 257개를 기록했다.
임수혁이 최고의 시즌을 보낸 때는 1996년이었다. 이때 임수혁은 373타수 116안타, 타율 0.311로 타격 5위,  76개로의 타점으로 이 부문 3위에 랭크되었다.


 

"그때 수혁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제가 아니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타로 내 보냈다." - (고) 김명성 감독님의 회고 중(방송 중 내용을 재구성한 것으로 실제 김명성 감독의 언급내용과 조금 다릅니다.)


 

 

 





 - 최훈 카툰 중
 
 
최기문(포수):  시즌 타율 0.284에 홈런 5개, 19타점 기록. 바로 이해(1999년) OB(지금의 두산)에서 트레이드 되어 와서 강성우와 번갈아 마스크를 쳤다.

강성우(포수): 최기문이 오기전까지 90년대 중.후반 임수혁과 롯데의 안방을 양분했던 포수. 임수혁이 공격형이었다면 강성우는 수비형 포수였다. 이것은 상대적인 구분일뿐이다. 1992년 우승 당시 주전 포수였던 김선일과 신인 강성우가 공존했을 때 김선일은 수비형, 강성우는 공격형 포수라 불렸다. 마림포 시절 임수혁에게 밀리는 감이 있었으나, 1999년엔 임수혁과의 경쟁에서 앞섰다. 2000년 최기문이 두산에서 영입되면서 SK로 이적. 나중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된다.


공필성(3루수):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들은 노이로제에 걸렸다. 몸쪽 공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맞아서라도 걸어나가겠다는 그의 근성은 박정태의 악바리 근성과는 또 다른 맛을 선사해주었다.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주전 3루수. 1999년엔 박현승 백업으로 활약. 사구(死球)의 달인, 사구의 화신으로 불리는 공필성이지만 그가 1995년 그가 세운 22개의 사구기록이 바로 플옵이 열린 해인 1999년 현대의 박종호(모두 31개)에게 깨지게 된다.  현 롯데 코치.


김민재(유격수):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된 수비로 롯데의 승리를 견인했다. 원래 1991년에 입단, 한해 늦게 입단한 박계원보다 입단 선배였지만, 국대출신의 신인 박계원에게 밀려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주전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와신상담, 1999년엔 주전 유격수로 출전,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결승타를 쳤다. 김민재의 안타가 있었기에 임재철이 야생마가 되어 홈으로 뛰어들어 왔던 것이다. 스코어 6-5, 다시 역전. 그뒤 SK를 걸쳐 한화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가 은퇴하던바로 그해 문동환도 옷을 벗었다. 현재는 한화 코치. 2006년 WBC에서도 좋은 활약으로 한국팀을 4강에 올려 놓았다.


사실 10회말에 김민재 호수비 아니었으면 아마 졌을거다. 1998년 베이징 올림픽 박진만-고영민 더블플레이 때 보다 더 마음 조렸다. 더 멋졌고. 이거 잡고 나서 느낌이 오더라. 아.. 이기겠구나.



박현승(3루수): 주전 3루수로 출전. 1997년, 타율 0.301, 114 안타, 19 홈런, 63타점, 12 도루, 장타율 0.522를 기록,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1999년에 제대. 이해 플옵에 출전했다. 로이스트 재임 2년차인 1999년엔 2군에서 줄곧 생활하다 은퇴. 현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조경환(좌익수)
1999년 시즌 타율 0.284에, 안타 97개, 홈런 19개, 타점 65개를 생산, 나름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조경환 / 야구선수
출생 1972년 08월 82일
신체 키176cm, 체중92kg
팬카페 조경환 선수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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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호(좌익수): 타자에서 투수로 전향하기도 했지만, 플옵에서 임창용 킬러로 맹활약. 당시 컨디션이 괜찮았지만 김명성 감독의 조경환 키우기 운동에 가려 백업요원으로 출전. 지금은 엘지에서 간간히 일군 무대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임재철(중견수): 마지막 7차전, 그것도 8회 단 한번의 출전, 1분도 되지 않는 그 시간이 그를 팬들의 뇌리속에 각인 시켰다. 임수혁의 극적 동점홈런에 이어, 연장전 김민재의 안타 때 홈을 향해 폭풍질주를 하던 날렵한 선수를 기억하시는지. 그가 바로 임재철이다. 그 뒤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어 지금 두산 외야의 중심 선수가 되어 있다. 롯데에서 두산으로 간 선수들이 두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어서 한편으로 배가 아프지만 그래도 흐뭇하다. 최준석, 임재철, 이원석 모두 잘해주고 있다. 참고로 임재철은 1999년 입단한 신인이었는데, 2차 3순위였다.

사실 임재철의 폭풍질주는 삼성의 중계 플레이만 매끄러웠다면 '횡사가는 길'이 될 뻔한 사건. 동시에 그는 역적으로 몰렸을 거다. 아래 오른쪽 사진에서 홈으로 파고드는 임재철, 그 위로 삼성 3루수 김한수가 중계되는 공을 놓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젠 두산 유니폼이 더 잘 어울리는 임재철. 하지만 잊지는 마라. 많은 자이언츠 팬들은 당신이 회색 유니폼을 입고 달구벌 홈플레이트를 향해 내달리던 그 모습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그 사실을..


참고로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선수 중 조성환(2차 8순위)은 지금 주전 2루수로 뛰고 있다. 그리고 송승준(고졸우선지명), 김사율(2차 1순위)은 자이언츠의 대표적인 선발, 마무리로 활약하고 있다. 요즘 김사율의 별명은 사리아노 율베라! 

1999년은 최초로 FA(자유계약) 제도가 도입된 해였다. 그리고 99년은 프로야구 최초 양대리그가 도입되었다.

드림리그 : 롯데자이언츠, 현대유니콘스, 두산베어즈, 해태타이거즈

매직리그 : 삼성라이온즈, 한화이글스, LG트윈스, 쌍방울레이더스 

 



1999년 플옵 7차전 기록지.
출처: http://olv.moazine.com/rviewer/index.asp

 

 






 




내 머릿속 최고의 포스트시즌: 1999년 플레이오프 (vs. 삼성 라이온즈)


장면 1: 호세 방망이 관중석 투척 사건
장면 2: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포효하는 주형광
장면 3: 홈런 때린 후 작렬한 마해영의 분노의 세레모니?
장면 4: 게임이 중단되었을 때 박정태가 선수단 이끌고 퇴장하던 모습
장면 5: 동점 홈런을 때리고 두손을 번쩍 들어 환호하던 임수혁


"1999년 리그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에 몰렸으나, 5, 6, 7차전을 모두 6-5 한 점 차로 승리하였다. 특히 한국 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은 7차전은 프로 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기록되었다. 한국 시리즈에서는 한화 이글스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마해영이 .372로 역대 타격 5위의 기록을 세우며 타격왕에 올랐고, 박정태는 31게임 연속 안타의 기록을 수립했다. 스위치 히터 펠릭스 호세가 좌우타석 홈런, 연속게임 만루홈런과 1만번째 홈런의 주인공이 되는 진기록도 보여 주었다. 1999년 롯데는 팀평균자책점과 팀타율 모두 1위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팀 타율 .291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진기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하지 못하였다.(역대 7번 중 1999년 롯데를 제외하고 모두 우승)"  - 출처: 위키페디아




1999년 롯데 자이언츠의 모든 것. (출처: http://www.pgr21.com)
 
타자 부문

김응국 : 125경기 출장, 타율 0.293, 555타석 481타수, 141안타, 8홈런, 60타점, 98득점, 12도루
박현승 : 100경기 출장, 타율 0.263, 405타석 342타수, 90안타, 6홈런, 49득점, 12도루
박정태 : 127경기 출장, 타율 0.329, 540타석 456타수, 150안타, 11홈런, 83타점, 83득점
호세 : 132경기 출장, 타율 0.327, 553타석 462타수, 151안타, 36홈런, 122타점, 93득점, 12도루, OPS : 1.061
마해영 : 132경기 출장, 타율 0.372, 579타석 503타수, 187안타, 35홈런, 119타점, 111득점, OPS : 1.114
조경환 : 118경기 출장, 타율 0.284, 383타석 342타수, 97안타, 19홈런, 65타점
임수혁 : 73경기 출장, 타율 0.250, 126타석 112타수, 28안타, 3홈런,19타점
강성우 : 112경기 출장, 타율 0.283, 208타석 191타수, 54안타, 1홈런, 12득점
김민재 : 130경기 출장, 타율 0.272, 447타석 389타수, 106안타, 6홈런, 54득점, 18도루
최기문 : 95경기 출장, 타율 0.284, 212타석 190타수, 54안타, 5홈런, 32득점
김대익 : 131경기 출장, 타율 0.246, 483타석 415타수, 102안타, 9홈런, 75득점, 16도루
 
 
투수 부문

문동환 : 30등판, 28선발, 189.1이닝, ERA : 3.28, 17승(17선발승) 4패, 141K
주형광 : 31등판, 28선발, 190이닝, ERA : 3.98, 13승(13선발승) 12패 1세이브, 177K
박석진 : 33등판, 16선발, 148.1이닝, ERA : 3.58, 11승(8선발승, 3구원승) 3패 2세이브, 101K
기론 : 24등판, 5선발, 73.2이닝, ERA : 3.30, 5승(2선발승, 3구원승) 1패 2세이브, 57K
박보현 : 33등판, 14선발, 103이닝, ERA : 4.89, 5승(2선발승, 3구원승) 6패, 59K
강상수 : 55등판, 1선발, 77.2이닝, ERA : 2.78, 5승(5구원승) 7패 19세이브, 66K
 
 
타자

홈런 : 호세(5위), 마해영(6위)
타점 : 호세(2위), 마해영(3위), 박정태(21위)
타율 : 마해영(1위), 박정태(7위), 호세(9위)
도루 : 김민재(12위), 김대익(15위), 호세(22위), 김응국(22위), 박현승(22위)
득점 : 마해영(3위), 김응국(7위), 호세(9위), 박정태(15위)
 
 
투수

다승 : 문동환(3위), 주형광(8위), 박석진(13위)
탈삼진 : 주형광(3위), 문동환(7위), 박석진(17위)
평균 자책점 : 문동환(4위), 박석진(5위), 주형광(7위)
세이브 : 강상수(5위), 정원욱(12위), 박석진(20위), 기론(20위)
 
 
상대전적(vs. 모든 팀)

vs 두산 : 12승 7패 1무, vs 삼성 : 6승 11패 1무, vs 한화 : 10승 7패 1무, vs 현대 : 15승 5패, vs LG : 8승 10패, vs 해태 : 12승 8패, vs 쌍방울 :  12승 4패 2무

총 75승 52패 5무

팀 성적

득점 : 753(2위), 실점 : 590(8위), ERA : 4.18(1위), 타율 : 0.291(1위), 홈런 : 145개(4위) - LG와 공동 4위 - , 도루 : 98개(7위) - 해태와 공동 7위 - 
 





- 시리즈 최종 전적: 롯데 자이언츠 승(4승 3패) (vs. 삼성 라이온즈)

1차전(대구) : 삼성  5-4 롯데 (스미스 결승타, 박충식 승) 
2차전(대구) : 삼성  6-2 롯데 (김상진 승/주형광 패)
3차전(사직) : 롯데 10-2 삼성 (박석진 승/김진웅 패, 호세 플레이오프 첫 안타)
4차전(사직) : 삼성  9-6 롯데  (노장진 승/문동환 패)
5차전(사직) : 롯데  6-5 삼성 (손민한 승/임창용 패, 호세 임창용 상대로 9회말 끝내기 3점 홈런) 
6차전(대구) : 롯데  6-5 삼성 (박석진 7이닝 퍼펙트, 마해영 3점 홈런)
7차전(대구) : 롯데  6-5 삼성 (주형광 승/임창용 패, 김민재 결승타, 양팀 6방)
 





 
-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으나.. 한화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 1승 4패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무른다. 하지만 자이언츠팬들 중 1999년 한국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다. 플레이오프의 잔상이 너무 강하게 남아서.



- 가을동화가 끝난 뒤

홍성흔이 신인왕에, 이승엽은 MVP에 올랐다. 그리고 MR.롯데 김용희는  삼성 감독에 취임했다.
 



- 글: 인터넷과 신문, 잡지 매체 등에서 찾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때론 희미한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직접 작성. (일부는 인용(퍼옴))
- 잡다한 사진, 동영상 출처: 인터넷 바다. 
- 글쓴이 왈: "자료나 데이터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1999년 플레이오프 관련 자료, 데이터를 참고해서 글을 적었는데, 부정확한 부분도 간간이 보이더군요. 따라서 본 글에 삽입된 수치들이 반드시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틀린 부분, 오류가 난 부분은 지적해 주시면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 선수들의 현재 근황은 자료수집 시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1999년 플레이오프 관련 자료, 데이터를 참고해서 글을 적었는데, 부정확한 부분도 간간이 보이더군요. 따라서 본 글에 삽입된 수치들이 반드시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틀린 부분, 오류가 난 부분은 지적해 주시면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 글: 인터넷과 신문, 잡지 매체 등에서 찾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때론 희미한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직접 작성. (일부는 인용(퍼옴))
- 잡다한 사진, 동영상 출처: 인터넷 바다. 
- 선수들의 현재 근황은 자료수집 시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