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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이야기/열린 영문법

the men, the bombs - 정관사(the)는 모든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버린다.

정관사(the)는 모든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버린다. 2005년 8월 1일자 <타임>에서는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특집기사로 다루고 있다. 아래는 일련의 특집기사들 중 한 기사의 제목이다.

The Men Who Dropped the Bombs

짐작이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미군 폭격기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 제목이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그리고 상명하복이라는 절대적 복족의 지휘체계 아래 자신들조차 그 핵폭탄의 위력을 알지 못했던 조종사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비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등에 관해 <타임>에서 집중조명하고 있다. 이 헤드라인은 정관사 the의 용법을 익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문이다. 

짧은 예문 속에서 정관사 두 개의 정관사(the)가 사용되어 문장 속 the men이 바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바로 그 미군조종사들이라는 사실에 못을 박아 버린다. 재고의 여지도 없고 조금 달리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는다. the bombs는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폭탄 들 중에 그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그 폭탄들, 다시 말해 원자폭탄을 의미한다. s가 붙은 사실은 폭탄이 최소 2개 이상 떨어뜨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폭탄을 떨어뜨린 사람들(조종사) 은 전쟁에 참전한 많은 병사들 중, 딱 네 명으로 범위가 좁혀진다.  



아주 비슷한 제목이 하나 더 있다. A.Q. Khan 이라는 핵무기 밀매업자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타임 2005. 2. 14일자 특집 기사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The Man Who Sold the Bomb

원폭기사에 실린 기사의 제목과 동사 하나가 다를 뿐이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상기하면서 이 제목에 접근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단순히 그 폭탄을 판매한 그 남자(사람)이라고 무미건조하게 생각하는 것 보단 정관사의 존재를 떠올리며 실감나게 한번 해석을 해보자. 여기서 the bomb은 단순한 폭탄이 아닌 핵폭탄을 말한다. 즉 정관사가 결합함으로써 그 범위를 구체화 시키고 있다. 아울러 the man은 바로 ‘칸’이라고 못을 박아 버린다. 만약 타임에서 다음과 같은 제목을 사용했다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A Man Who Sold a Bomb


만약 위와 같이 부정관사를 사용해서 제목을 붙였다면, 조금 더 생각의 여지를 줄 것이다. 사실 이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두들 안다. ‘칸’이다. 그리고 그가 취급하는 무기 종류가 ‘핵폭탄’인 것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이 칸과 그 핵무기를 a man, a bomb 이라고 표현할 경우에는 읽는 독자들에게 [a man = 칸], [a bomb = 핵폭탄]이라는 등식을 바로 떠올리기보다 중간에 한번 돌아가는 효과를 주게 된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를 the love story 라고 하는 것 보다 a love story 라고 제목을 붙인다면 뭔가 모를 여운이 남듯이.


아래 2004년 미국 대선을 다룬 기사 제목을 보자. 타임 2004년 1월 12일자 미국 대선 특집 기사의 소제목 중 하나다.

The Road To The White House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문자로 표시된 White House 만 해도 미국 대통령이 서식하는 ‘백악관’이란 장소가 확실한데, 거기에 정관사 the가 붙어서 더욱 의미를 구체화시키고 있다. 물론 관용적으로 백악관은 the White House로 표기된다. ‘관용적’이란 이유를 ‘전가의 보도’로 삼아 그냥 슬쩍 넘어가도 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자. 백악관은 적어도 그 건물이 건축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의 거주지란 그 본래의 기능은 늘 그대로 유지해 왔으며 그 ‘미국 대통령 거주지, 집무실’이란 그 의미가 변한 적은 없다. 하지만 빌 클린턴의 성추행으로 얼룩진 백악관과 지금 오바마가 살고 있는 백악관은 같은 것일까? 시사영역에서 the White House라고 하는 것은 백악관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행정부를 상징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주인이 바뀔 때마다 백악관의 성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정관사 the가 결합해서 the White House가 되는 것이 이치에 맞을 지도 모른다.


아울러 길도 그냥 길이 아닌 The Road 이다. 백악관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고 다시 11월 본선(general election)에서 상대방 후보를 꺾어야만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인들은 2004년 백악관 주인이 되기 위해 후보자들이 걸어가는 그 험난한 길을 The Road to The White House 라고 부를 것이다.

참고로 빈센트 반 고호의 대표작 이름 중 The White House At Night 란 작품이 있다. 물론 여기서 ‘화이트 하우스’는 말 그대로 하얀색 집이다. 


온통 선정적 헤드라인, 낚시질 기사로 도배된 우리나라 대표 포털 ‘Ne2Var’를 비롯한 국가대표 포털 사이트 덕분에 우리들에겐 무척이나 생소하지만, 2004년 전후로 아프리카 대륙의 ‘수단’이란 나라는 큰 비극을 겪었다. ‘다풔(Darfur)’ 사태로 더 잘 알려진 수단 사태를 <타임>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룬 적이 있다. 5천명이 죽고 수천 명이 더 죽을 운명에 처해 있었으며, 1백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던 다풔의 비극. 사태의 심각성 때문인지2004. 10. 4일자 <타임>에서 특집으로 다루게 된다. 그때 표지 제목이 아래와 같다.

The Tragedy of Sudan 


the가 결합함으로써 수단이 겪고 있는 현재의 비극이 너무나 확정적이 분명해줬다. 이것을 어느 문법책을 보고서 문장 뒤에 [of + Sudan]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tragedy 앞에 the가 붙어서 the tragedy 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좋아한다면 관사공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단순한 암기로는 절대 관사를 정복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사실 위 예문에서 tragedy 앞에 a가 결합한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위에서 입이 아프도록 설명했지만, a가 결합하면 여운을 남긴다. 즉 수단이 겪고 있는 작금의 사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the tragedy가 주는 인상만큼 확정적이고 명확하지는 못한 반면, 어떤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타임 2005. 9. 12일자에 실린 허리케인 카트리나 관련 특집기사를 보자. 타임은 이 특집기사의 표지제목으로 아래 문장을 선택했다.

AN AMERICAN TRAGEDY

같은 비극이지만 수단 다풔 사태의 비극은 the tragedy 로 미국 뉴올리언스 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이 카트리나의 비극은 an American tragedy로 표현하는 차이를 두고 있다. 만약 The를 사용해서 the american tragedy 로 했다면 어떤 느낌이 올까. 단지 관사 하나 바뀌었을 뿐이지만 뉘앙스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실 관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냐고,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것은 관사를 문법의 틀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사는 문법 넘어, 또는 문법영역 밖에 위치하면서 문장 속에서 그 의미를 섬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