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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PC 시대’ 연 동갑내기 세 거인, 전설 남기고 뒤안길로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서 퍼옴.


‘PC 시대’ 연 동갑내기 세 거인, 전설 남기고 뒤안길로



스티브 잡스가 24일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다.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에서 물러난 빌 게이츠, 올 초 구글 CEO 자리를 창업자 래리 페이지에게 물려준 에릭 슈밋에 이어 ‘개인용 컴퓨터(PC)의 시대’를 주름잡았던 세 거인이 2선으로 후퇴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1955년생이다. 애플·MS·구글은 대표적인 정보기술(IT) 업체로 꼽히지만 성격이 다르다. 게이츠는 PC를 기반으로 ‘윈텔(윈도+인텔) 제국’을 건설한 소프트웨어(SW)의 황제다. 슈밋은 10년간 구글의 사령탑 역할을 맡으며 개별 PC가 아니라 인터넷을 바탕으로 하는 네트워크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잡스는 맥(PC)에서 아이폰(스마트폰)·아이패드(태블릿)로 이어지는 다양한 기기를 통해 동일한 콘텐트를 즐길 수 있는 생태계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세 거인의 퇴장은 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는 현실을 상징한다. 이제 관람객들의 눈길은 ‘포스트 트로이카’ 시대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질 ‘젊은 피’들의 각축전으로 쏠리고 있다.

1975년 하버드대를 중퇴한 스무 살의 청년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MS를 세웠다. 잡스는 한 해 늦은 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손을 잡고 애플컴퓨터를 창업했다. 초반에는 잡스의 천재성이 빛을 발했다. 애플1(76년)과 애플2(77년)를 잇따라 내놓으며 개인용 컴퓨터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했다. 82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매년 말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로 잡스를 염두에 뒀을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해의 인물은 사람이 아니라 PC로 결정됐다. 잡스는 84년 매킨토시를 내놓으며 화려한 20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반면 게이츠의 출발은 상대적으로 평범했다. 처음에는 고만고만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였다가 1980년 IBM 호환PC에 들어가는 운영체제(OS)인 MS-DOS를 개발하면서 뜨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서른 살이 된 85년부터 운명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게이츠는 84년 첫선을 보인 MS-DOS 3.0 버전이 3000만 개 이상 팔리며 PC 시장의 표준이 됐다. 이어 오피스(90년)·윈도95(95년)를 잇따라 내놓았다. 95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의 부자 리스트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잡스에게 이 10년은 암울한 시기였다. 85년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난 것이다. 쿠데타의 주인공은 존 스컬리. 2년 전 펩시의 사장이던 그를 “평생 설탕물을 팔며 보낼래,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을래?”라고 설득해 애플로 데려온 것이 바로 잡스였다. 애플에서 밀려난 그는 픽사를 인수해 ‘토이 스토리’ 등을 만들어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잡스가 96년 신제품의 연이은 실패로 궁지에 몰린 애플로 복귀한 것을 계기로 잡스와 게이츠는 협력의 10년을 열었다. 88년부터 이어진 MS와 애플의 법정다툼을 마무리했다. 잡스는 97년 게이츠로부터 1억5000만 달러의 투자도 이끌어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두 사람은 승승장구했다. 게이츠가 ‘PC월드’를 쥐고 흔드는 황제로, 잡스는 아이맥·아이팟으로 만든 자신의 영토를 굳게 지켰다. 하지만 2007년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오면서 둘의 관계는 역전됐다. 게이츠는 2008년 창업한 지 33년 만에 MS에서 손을 떼고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반면 잡스는 스마트폰(아이폰)-응용프로그램(앱스토어)-콘텐트(아이튠즈)를 아우르는 모바일 생태계를 완성하며 포스트PC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게이츠와 잡스의 부침은 바로 IT 산업의 변화를 정확히 반영한다. IBM과 애플이 만든 PC는 대부분 MS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시장의 법칙이 바뀌었다. 결과는 두 회사의 실적에서 바로 드러난다. 지난해 5월 애플의 시가총액은 2221억 달러에 달해 MS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10년 만에 1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MS는 18% 줄었다.

이 과정에서 소리 없이 강자로 떠오른 것이 구글이다. 98년 당시 25세이던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가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인터넷 검색업체를 차렸을 때 세계 최고의 온라인 기업이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1년 노벨의 CEO이던 에릭 슈밋은 구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제록스와 벨의 연구원을 거쳐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는 프로그래밍 기술인 자바의 개발을 주도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용 공개 OS인 안드로이드를 내놓았다. 안드로이드는 올 들어 애플을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리는 OS가 됐다. 한동안 ‘반(反)MS’의 선봉장으로 불렸던 슈밋은 구글을 애플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키운 뒤 올 초 회장으로 물러났다.

잡스 이후 애플의 미래는 게이츠가 물러난 뒤의 MS 만큼이나 험난해 보인다. 하버드대 라케시 쿠라나(경영학) 교수는 “제왕은 제왕이 물려받아야 기업의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잭 웰치 이후의 제너럴일렉트릭(GE)과 리 아이어코카가 떠난 뒤의 크라이슬러 등은 제왕적 리더의 자리를 그저 그런 후계자가 물려받아 문제가 발생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81년 46세의 나이로 GE의 CEO가 된 웰치는 직원 10만 명을 해고하고 1, 2위가 아닌 사업부문은 과감히 포기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악명을 쌓았다. 하지만 20년 뒤 퇴임할 때까지 시가총액을 120억 달러에서 4500억 달러로 키우는 성과를 냈다. 그의 퇴임 후 10년 동안 GE의 주가는 60% 이상 떨어졌다. 앤드루 워드 리하이대 교수는 “웰치가 후계자로 지명한 제프리 이멀트는 ‘한 사람의 영감보다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조직의 관료화를 불러왔다”고 평했다.

MS나 애플과는 달리 구글은 ‘제왕적 카리스마’의 부재에 따른 금단증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38세의 창업자 페이지가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돌려받았다. 실리콘밸리의 ‘젊은 피’인 그는 앞 세대의 거인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PC뿐 아니라 모바일까지 영토를 넓히고 사용자들이 원하는 응용 프로그램과 콘텐트는 무료로 제공한다. 수익은 검색 광고 하나로 낸다. 자동차까지 무선 네트워크로 묶어 운전자 없이도 자동으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시스템을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내세울 만큼 사고방식이 자유롭다. 지난 15일 모토로라를 125억 달러(약 13조원)에 인수하며 승부사적인 기질도 드러냈다. 그가 1955년생 트로이카의 뒤를 이을 ‘차세대 황제’감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김창우 기자 kcwsss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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