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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美 역대 대통령 취임사 '베스트 5'

주목받는 美 역대 대통령 취임사 '베스트 5'


취임식 이틀 앞으로...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식이 열릴 워싱턴 미 의회 의사당의 웨스트 프론트가 19일(현지시간) 성조기와 성조기 문양의 휘장으로 단장돼 있다. bulls@yna.co.kr

"위기의 순간, 역사의 극적인 순간 탄생한 공통점"

(서울=연합뉴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오랜 기억에 남는 명 취임사를 남긴 주인공은 누굴까?

대통령의 취임사는 시대정신이 함축돼 있고, 국가가 처한 난제를 풀어나가야 할 국정 최고지도자의 고민과 철학, 정책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한 마디 한 마디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또 협력자이면서 경쟁자이기도 한 의회를 설득하고, 국민에게 국정 청사진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만큼 논리와 설득력, 선명성과 리더십이 담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유서깊은 미 의사당에서 21일(현지시간) 개최될 재선 취임식에서 '언어의 조율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과연 어떤 내용의 취임연설을 할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민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위대한 취임사일수록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 새 역사의 장을 여는 극적인 순간에 탄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워싱턴포스트(WP), CBS 등 미 언론들은 19일(현지시간) 역대 43명의 대통령 취임사 중 '베스트 명연설'들을 꼽아보면서 오바마 연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다만, WP는 10개, CBS는 6개를 각각 '베스트 취임사'로 선정했다. 

언론과 역사학자들 취향에 따라 조금씩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의 연설이 '베스트 5'였다는데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 제퍼슨(1801년 취임사) = 1800년 선거에서 경쟁상대인 애런 바와 똑같이 73표를 획득, 하원 표결을 거쳐 어렵사리 대통령에 당선된 케이스다. 초박빙의 표 대결은 공화주의자와 연방주의자간 반목과 갈등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제퍼슨은 이런 갈등과 논란을 불후의 취임사로 불식시켰다. 그는 두 손을 불끈 쥐고 "견해의 차이가 꼭 원칙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는 모두 공화주의자이자이고 연방주의자다"라며 국민통합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상대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자는 우리 사회 관용의 상징으로 내버려 두자"며 화합과 관용을 거듭 당부했다.

◇ 링컨(1865년) = 게티스버그 연설의 주인공인 링컨의 재선 취임연설은 역대 미 대통령 취임사들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남북전쟁의 전세가 북군의 승리로 완전히 기울었던 1865년 링컨은 "아무에게도 적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자선의 마음으로 의로운 편에 굳건히 서서 우리가 처해 있는 일을 끝내도록 노력하자"고 화합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의 상처를 봉합하는 데 온 힘을 다하자. 전투에서 쓰러진 사람과 미망인, 고아들을 돌보도록 애쓰자"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비교적 짧았던 이 명연설은 두개의 진영으로 갈라져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미 사회를 통합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로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 루스벨트(1933년) = 미 경제가 3년 넘게 이어져 온 대공황으로 아사 직전까지 내몰렸던 1933년 3월4일 제3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당시 1천300여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수천 개의 은행, 수만 개의 기업이 도산했을 정도로 처참한 시대였던 점을 감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로 국민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체 없는 두려움에 떨지 말고 일터로 돌아가 국력을 모아 달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그는 이 취임사처럼 매사에 솔선수범했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취임 직후 100일 동안 수많은 개혁 법안을 통과시켜 이른바 '뉴딜(New Deal) 정책'을 밀어붙였다. 

한때 공산주의자라는 비판까지 받았지만, 개혁 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고, '노변정담'이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뉴딜정책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국민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줬다. 

◇ 케네디(1961년) = 대통령에 당선된 지 2년 만인 1963년 암살당한 케네디는 미국민들 뇌리에 "다소 도발적이지만 설득력 있는" 명연설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젊고 매력적인 케네디는 취임 연설부터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자문해 보라"면서 국민에게도 '과제'를 던졌다.

미 역사상 여섯 번째로 단명한 1천일의 대통령 케네디. 유명을 달리 한지 벌써 50년이 되는 그가 미국민 가슴을 그렇게 끈질기게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이런 도발성과 설득력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명문가 출신으로 기품 있는 외모, 혜안과 지성, 진보에 대한 열정을 가진 반편, 평생 병마로 인한 죽음의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몰입했던 여성 편력에 이르기까지 한 '불운한 행운아'의 삶을 산 비운의 대통령이기에 미국인들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미국인은 지금도 11월 22일 기일이 되면 어김없이 댈러스시 저격 현장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 레이건(1981년) = 그가 취임할 당시 미 경제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오일 쇼크)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이 강타한 암울한 상황이었다.

보수주의자인 레이건은 취임사에서 '작지만 강한 미국'을 역설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국민에게 다정다감하게 접근했던 그는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정부가 바로 문제 그 자체"라는 말로 신(新)보수주의 이념에 바탕을 둔 '작은 정부'의 역할을 설파했다. 

그는 "우리의 창조적인 에너지로 국가 부흥의 시대를 열자"면서 "우리의 의지와 용기, 힘을 되찾자"고 단결을 호소, 근세 미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온화하면서도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미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던 레이건은 최근 대선 때마다 '미 공화당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원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cbr@yna.co.kr

+ 기사출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