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특히 목덜미가 예뻤어… 귀밑 목선이랑 솜털이…”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드라마 ‘대장금’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다. 어린 장금이의 남다른 미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국어의 앙증맞은 리듬감이 살아 숨쉬는 대사랄 수 있다. “식구가 뭐여? 같이 밥 먹는 입구멍이여”(영화 ‘비열한 거리’)나 “전국구 깡패 되기보다 서울대 갈 확률이 높지”(영화 ‘뚝방전설’) 같은 명대사들은 해당 영화와 드라마를 오래도록 빛나게 만드는 생명력 자체다.
최근 본 영화 중 대사가 기억에 남은 건 단연 ‘파주’(박찬옥 감독)다. 형부와 처제가 나누는 ‘위험한’ 애증을 통해 386세대의 죄의식을 담아낸 이 영화에서 주인공 중식(이선균)이 자신의 첫사랑을 묘사하는 대목은 사변적이면서 선정적이다.
“특히 목덜미가 예뻤어. 머리를 한쪽 어깨로 쓸어내리면, 귀밑 목선이랑 솜털이 드러나….”
여성의 새하얀 목덜미나 각질 없는 뒤꿈치, 십(十)자 모양 흉터가 선명한 무릎을 보고 흥분하는 남성은 주위에 적지 않으나, 이 영화는 ‘귀밑 솜털’이라는 더욱 디테일한 매혹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중식이 아내의 등에 난 커다란 화상자국을 혀로 연방 핥으며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하면서 성행위를 하는 대목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여주인공들이 “나 깨끗해지고 싶어. 나 깨끗해지고 싶어”를 중얼거리며 남자와 관계를 맺는 장면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두 대사 모두 원죄 같은 죄책감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억압적 심리의 발로. 상처(喪妻)한 중식이 처제 은모(서우)와 나누는 다음 대사는 일견 ‘처제의 일기장’ 같은 비디오용 에로영화를 방불케 하지만, 기실은 처제에 대한 원망을 스스로에 대한 속죄의식으로 극복하려는 형부의 고뇌가 녹아있다.
“형부, 언니 사랑했어요?”(은모) “난 언니를 사랑하지 못했어.”(중식) “첫사랑 여자 때문에요?”(은모) “이젠 그 여자랑은 사랑하고 말고도 없어. 우린 사랑할 수 없어. 이제.”(중식) “그럼, 저는요….”(은모) “은모야. 난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중식)
할리우드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대사로 유머와 서스펜스를 빚어내는 타란티노의 재능을 재확인시킨다. 타란티노는 비현실적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더 비현실적인 대사를 통해 영화를 해체하는 동시에 직조(織造)해 가는 대중예술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출신의 미군 알도 레인 중위가 이끄는 ‘개떼들’이라는 비밀부대가 나치를 혼내준다는, 딱 한 줄짜리 내용의 영화. 주인공 알도 레인(브래드 피트)은 나치들의 이마에 칼로 나치표식을 새기는, 잔혹하면서도 왠지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 다음 같은 ‘타란티노 표’ 대사를 날린다.
“날로 솜씨가 좋아지시네요. 중위님.”(부하) “카네기홀 연주자들이 훌륭한 연주를 하는 비결이 뭔지 아나? 바로 연습(practice)이야!”(알도 레인)
윤제균 감독의 영화 ‘해운대’에서도 직설화법을 주로 구사하는 윤 감독 영화답지 않게 감성적인 은유법을 구사한 대사가 있으니…. 해상구조대원 형식(이민기)과 여자친구 희미(강예원)가 나누는 대화는 영화의 가슴 짠한 여운으로 남는다.
“형식 씨 같은 사람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희미) “뭐라고 하는데예?”(형식) “오후 3시.”(희미) “오후 3시?”(형식) “뭘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고, 끝내기엔 너무 이른 어정쩡한 시간….”(희미)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 기사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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