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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독서

이정희 통진당 대표 단식으로 적어 보는 단식 이야기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 업적의 찬양에서가 아니라 거꾸로 그 인간적인 실패나 고뇌에서 가능합니다. 선생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그분의 실패를 만나야 합니다. 사실로 선생께선 그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실패를 말씀하시려 했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들 대신 그 부정한 빵을 잡수신 게 아니라 선생께선  당신의 금식과 실패를 정직하게 고백하시려 하셨는지 모른단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선생의 실패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 무엇 때문에 그런 속임수 금식을 하셔야 했느냐는 비난이 따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금식하시는 선생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선 당신께 대한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으셨던 거란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마 선생의 그 참담스런 자기배반의 고백을 만나고 나면 더 선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이청준, <뺑소니 사고> 중에서

 



이청준의 단편 <뺑소니 사고>에는 '단식'이 하나의 소재로 등장한다. 단식투쟁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존경하는 일파선생이 단식 중에 물 한모금 마셨다는 사실에 주인공(배영섭)은 충격을 받고 실망한다. 물론 그가 직접 선생이 물 마시는 장면을 목격한 건 아니다. 하지만 배기자가 우연히 목격한 잔의 개수가 모두 세개로 배석자 수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일파선생이 단식 중 물을 마셨다는(물을 마셨다면 밥도 먹었을 가능성도 있고) 확신을 갖게 만든다. 배영섭은 이후 끊임 없이 '세개의 잔'과 '부정한 빵'을 둘러싼 진실(일파선생의 속임수 금식)을 파헤치던 중 의문의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고 만다.



작가 이청준이 이 소설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소설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서, 단순히 단식(금식)만 놓고 보자면, 사실  단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입장에서 꼴랑 물 한모금 마신 게 뭐가 그리 대수겠느냐.. 고 본능적으로 되묻게 된다. 단식할 때 완전히 굶는 건 아니고 적당히 물은 마신다, 단식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최소한의 영양분은 몰래몰래 섭취한다.. 안그러면  사람 죽는다.. 등의 얘기를 한번씩 듣다 보니 <뺑소니 사고>속에 등장하는 '세개의 잔', '부정한 빵' 이야기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름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달성횟수가 빈번한(?) 메이저리그 퍼펙트 게임, 노히트 노런의 느낌마저 드는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의 단식투쟁. 그들의 모습을 보면 <뺑소니 사고>속 일파선생의 모습이 오버랩되곤 한다. 저들이 떠난 자리에는 몇개의 잔이 놓여있을까. 저들은 자신의 잔에 물을 채웠을까.. 하는 '부정한' 생각도 잠시나마 드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니 없어야 하겠지만. 없겠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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