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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집안…그래도 우린 한가족

콩가루 집안…그래도 우린 한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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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

원조교제 휘말리는 아버지ㆍ악다구니 엄마…

가족 가치 인정하지만 혈연 집착엔‘메스’


‘논어’식으로 표현하면 ‘불역낙호(不亦樂乎)아’다. 박찬욱 스타일로 말하자면 일종의 시트콤이요, ‘싸이코 가족이지만 괜찮아’다.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는 ‘바람난 가족’의 해체주의와 ‘가족의 탄생’의 탈(脫)혈연적 가족주의 사이에서 가족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모색하는 극장판 ‘거침없이 하이킥’이라 할 만하다. 개인 욕망과 가족제도가 맺는 관계는 비극적이라는 반가족주의적인 시각을 포용하는 듯하면서 동시에 이 영화는 ‘모여산다는 것’ 혹은 ‘같이 밥 먹는다는 것(食口)’이라는 가족의 가치를 긍정한다. 말하자면 “콩가루집안의 거침없는 헛발질,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다.

콩가루 집안의 헛발질 내력을 보자. ‘하이킥’에 ‘야동순재’가 있었다면 여기서도 아버지가 문제다. 수업 중 절반 이상의 학생을 재우는 여고생 교사 창수(천호진 분). 융통성도 유머감각도 없는 중년의 아버지는 허리띠 졸라맨 아내(문희경)의 악다구니에 치여 오늘도 떨궈진 고개를 들 줄 모른다. 그가 ‘원조교제 동영상’ 사건에 휘말린다. 악다구니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 어머니는 노래방청년(이기우 분)이 건넨 커피향에 문득 마음이 흔들린다. 전생이 왕이었다고 주장하는 엉뚱한 아들(유아인)은 이웃의 ‘나쁜 소녀’(정유미 )에 운명을 걸고, 세상이 온통 궁금하기만 한 딸(황보라)은 학교의 날라리 영화담당 특별교사(박해일)가 만든 ‘미스터리 동호회’에 가입한다. 이들 4인 가족에 더부살이를 하는 이모(김혜수)는 무협작가임을 자처하지만 실제는 게으른 백수다.

극중에는 “달의 이면에는 거대한 인공구조물이 있지만 지구에서는 언제나 한쪽 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거실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앞모습만 볼 수 있는 가족들이 꼭 그 같은 꼴이다. 등장인물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같이 밥 먹는 입’이라는 식구 본연의 의미대로 밥상의 풍경을 빈번하게 보여주면서도 때로 서로가 볼 수 없는 뒤통수에도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영어제목 ‘A Skeleton In The Closet’은 ‘벽장 속의 해골’이라 직역되는 이 의미는 ‘남이 모르는 창피한 비밀’이나 ‘집안의 수치’를 뜻하는 속담이다. 달이 자전하듯 개인은 각각 제나름의 욕망의 원리가 있고, 가족은 각 구성원의 한쪽 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둠에 가렸던 이면, 벽장 속의 해골이 드러날 때 가족이라는 공전주기는 교란된다. 

한동안 한국영화는 개인의 욕망과 혈연 중심의 가족제도가 만나 이루는 비극을 종종 파괴적으로 묘사해 왔다. 반면 극심한 사회적 경쟁과 전쟁으로부터 돌아갈 최후이자 최고의 안식처로 가족을 묘사하는 전통적인 드라마도 꾸준히 선보여왔다. ‘좋지 아니한가’는 두 가지 흐름 사이에서 개인의 욕망과 가족제도를 화해시키려는 젊은 감독들의 최근 경향을 보여준다. 그것은 ‘반복되는 관계’로서의 가족의 가치를 긍정하면서도 혈연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는 것이다. ‘괴물’ ‘가족의 탄생’ ‘좋지 아니한가’는 서로 다른 장르와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가족을 바라보는 닮은 시각을 보여준다.

‘말아톤’을 연출했던 정윤철 감독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을 통해 다양한 인물의 드라마가 얽히고 설키는 캐릭터 중심의 다층적 내러티브를 구축하며 새로운 영화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다. 배우들의 빼거나 모자랄 것 없는 열연으로 등장인물들을 보는 맛이 여간치 않지만 ‘가족 서로에게 조금만 덤덤하면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처럼 2%의 강렬함이 부족한 에피소드는 톡 쏘는 느낌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덤덤한 편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 기사출처: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