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이야기/열린 영문법
고유명사 앞에 정관사는 왜 붙을까?
젤리안
2020. 1. 17. 22:15
고유명사 앞에 정관사는 왜 붙을까? 이름만큼 완벽한 고유명사는 없다. 내 친구 경수는 다양한 별명들을 가지고 있다. 옆집에 사는 공부 지지리도 못하는 아이, 어릴 때 늘 울고 다니던 아이, 영자가 양다리를 걸칠 때 세컨드, 김씨 집 열 번째 아들 등등 경수를 지칭하는 표현들은 많다. 하지만 이름인 경수, 더 정확히는 박경수만큼 그를 완벽하게 묘사하는 표현은 없다. 그러하기에 일반적으로 고유명사 앞에는 관사가 붙지 않는다. 이제 이런 기본을 바탕으로 우리가 그동안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신념에 금을 내어보자.
아래는 폴 볼프위츠가 세계은행 총재가 되었을 때 <타임>에 실린 그에 대한 기사 제목이다. 알다시피 볼프위츠는 부시 행정부 시절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바로 밑에서 국방 부장관(Deputy Secretary of Defense)을 역임하며 ‘네오콘(NEOCON)의 핵심 멤버로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계획한 인물이다. 언론에서는 그를 An Architect of Iraq War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가 국방부장관에 물러난 뒤 부시는 그를 다시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이 기사는 바로 그 시점에 작성된 기사이다.
THE OTHER SIDE OF PAUL WOLFOWITZ
강경보수파 정치인 볼프위츠와 세계은행총재(President of the World Bank)로서의 그의 전혀 다른 모습, 바로 그 차이점을 다룬 기사이다. 사실 이 제목은 그다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폴프위츠의 또 다른 모습> 정도로 해석되며 the other side of ~ 과 같은 표현에 붙은 정관사(the)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그 아래 전개되는 기사내용 중, 아래 문장이 우리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아래 지문으로 기사는 시작된다.
This is not the Paul Wolfowitz the world is used to seeing.
세계은행 총재가 된 뒤, 아프리카를 찾아 아이들과 악수를 하며.. 하는 모습은 우리들이 지금까지 익숙히 봐오던 볼프위츠의 모습이 아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바로 정관사 the가 우리를 괴롭힌다. 누가 봐도 Paul Wolfowitz 는 사람 이름이 아닌가. 고유명사다. 지금까지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10년은 족히 넘게 영어책을 잡고 있었는데 사람이름 앞에 정관사가 붙는 것은 본 적이 있다. 딱 한번 있다. the Smith 와 같이 스미스 부부를 나타낼 때. 그 외엔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the Paul Wolfowitz 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고 볼프위치 부부에 대한 기사도 아니다. 그럼 여기서 the Paul Wolfowitz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관사는 어떤 대상을 구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이미 설명했다. 그렇다면 느닷없이 볼프위치 앞에 the가 붙었다는 사실은 ‘폴 볼프위츠’란 인물의 범위를 좁혀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볼프위츠란 이름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하고 그 인물 역시 10년, 20년 전 볼프위츠가 분명하지만, 한번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보자. 볼프위츠가 태어난 순간부터 오늘날의 볼프위치로 존재하기 까지, 그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 갓 태어난 볼프위츠
2) 코넬 대학 새내기 시절 볼프위츠
3) 사귀던 여자에게 퇴짜를 맞고 울던 볼프위츠
4) 부시, 체니와 함께 2003년 이라크 전쟁 계획안을 수립, 작성하던 볼프위츠
5) 세계은행 총재가 되어 아프리카를 순방하던 볼프위츠
대충 살펴봐도 그에게 5단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4)번과 5)번 사이 볼프위츠의 직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오직 ‘미국’의 국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방부장관이란 자리와 세계은행 총재라는 감투 사이에는 그 역할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국방부 제 2인자의 자리에서 전쟁을 계획하는데 깊이 관여했던 강경보수파 정치인 볼프위츠가 아닌 세계은행 총재 볼프위츠는 분명 그 역할 뿐만 아니라 이미지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타임>의 기사가 의도하는 것은 바로 이 차이점이다. 국방부 고위관리가 아닌 세계은행 총재로서의 ‘폴 볼프위츠’를 표현하기 위해 바로 정관사 the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아래의 the Paul Wolfowitz 는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강경보수파 네오콘 핵심인물인 그 볼프위츠를 의미한다.
This is not the Paul Wolfowitz the world is used to seeing.
앞에서 언급한 경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부 죽어라 공부 못하던 학생이지만, 개과천선해서 전교 1등을 차지했다. 이와 같이 전혀 달라진 모습의 경수라면 그 이름 앞에 the를 붙여 the Kyung-soo 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m 학교신문에서 경수를 인터뷰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리고 그 제목 앞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the Kyung-Soo는 공부 지지리도 못하던 그 시절 경수를 의미한다.
Where is the Kyung-Soo?
<타임>을 보면서 영어공부를 하는 친구라면, 볼프위츠 기사 제목을 패러디해서 아래와 같이 말할 지도 모를 일이다.
This is not the Kyung-Soo the school is used to seeing.
몇 해 전(2005년 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폭탄 테러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타임>기사를 보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The links to the Madrid bombings are tantalizing. (<타임> 2005. 1. 18일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는 우리나아의 서울(Seoul)과 같이 고유명사에 해당한다. 그러하기에 굳이 정관사 없이도 마치 우리들 이름처럼 온 세상에서 통용이 된다. 하지만, 위 기사 예문에서는 the가 붙어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정관사가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이 기사 속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마드리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드리드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Madrid bombings 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Madrid bombings 이라고 하면 마치 a car와 같은 불특정하고 지극히 일반적인 대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2005년 1월에 발생한 마드리드 폭탄 테러뿐만이 아니고 언제인지는 모르나 지금까지, 또는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마드리드 폭탄 테러를 모두 포함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세계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고 기사 속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2005년 1월에 발생한 폭탄테러이다. 그러하기에 범위를 좁혀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관사 the가 위치한다.
그렇다면 Madird 앞에는 정관사 없이 언제나 마드리드로 표기될까? 그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마드리드는 유일하기 때문에 정관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100년 전 마드리드와 2009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가 동일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청계천을 가지고서 얘기해 보자.
서울시를 가로질러 흘러 내려온 유구... 청계천. 이제 청계천을 가지고서 얘기를 한번 풀어보자. 청계천(Cheonggyecheon)은 사실상 고유명사이다. 그러하기에 굳이 정관사가 없더라도 지구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서울시 소속 청계천이란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몇해전 청계천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이 시점에서 새로워진 청계천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청계천 100배 즐기기란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다고 하자. 그리고 아래와 같은 제목을 붙였다.
Ten must-see places when you visit Cheonggyecheon (청계천에 가면 반드시 봐야할 구경거리 10가지)
사실상 완벽한 문장이고 좋은 제목이다. 하지만 이 기사제목을 본 <가쉽 데일리>의 김관상 편집장은 고개를 흔든다. 어딘가 부족하다는 판단. 입사당시 모든 시험과목에서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으나, 오직 영어 과목, 특히 관사 파트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 결국 신문사에 입사한 김 편집장이기에 위와 제목도 김씨를 감동시킬 수 없다. 그가 내놓은 수정제목은 아래와 같다.
10 must-see places when you visit the Cheonggyecheon
도대체 자신이 붙인 제목과 뭐가 다르냐고, 단지 관사 하나 더 붙은 것 아니냐고 박기자는 따지고 든다. 고유명사 청계천에 정관사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과연 그럴까.
‘청계천’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고, 그 이름이 고유명사란 사실은 편집장도 알고 있다. 하지만 김관상씨가 the를 붙인 것은 분명 그 이유를 가지고 있다. 바로 청계천은 변함없이 오랜 기간 서울의 한 복판을 흘러내려 왔지만, 200년 전, 100년 전 청계천의 모습, 그리고 70년대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격동의 변화기 속에서도 유유히 흘러내리던 청계천, 그리고 80-90년대 공부 못하던 삼촌이 야한 잡지를 수집하러 하루가 멀다하고 청계천 일대의 헌책방을 방문할 때의 그 ‘청계천’과는 다르다. 청계천 복원공사로 인해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하기에 비록 이름은 ‘청계천’으로 남아 있을지 몰라도, 전혀 달라진 그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 정관사 the를 사용해서 the Cheonggyecheon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아래 사진 두 장을 본다면 더 이해가 빨라질까. (사진 출처: 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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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청계천 | 청계천 복원공사 이후 청계천 |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어떤 기자가 새로워진 마드리드, 또는 오늘날의 마드리드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자 한다면 the Madrid라고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아직 고개를 갸우뚱 하고만 있는 사람들을 위해 ‘햇빛정책’을 가지고서 계속 얘기를 진행해 보자.
1998년 김대중 정부 이래 10년간 한국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Sunshine policy)로 불려온 온건정책이었다. ‘햇볕정책’ 자체는 사실상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관사를 수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햇볕정책이라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언급하고자 할 경우엔 뭔가 구분을 주어야 한다. 후임자인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는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부러 두 정부 간의 그 차이점, 비록 기조는 같을지라도 세부적인 면에서 다른 차이점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 이 경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관사 “the”이다. 적 the Sunshine policy 로 표현할 수 있다. 물론 관사 대신 고유명사를 바로 사용해서 Kim's Sunshine policy 로 나타낼 수 있다.